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

왜 미국은 DC코믹스의 슈퍼맨을 찾는 것일까.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크립토인 슈퍼맨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맨과 같은 존재를 원하는 것이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곁에서 실제 볼 수 있고 실체가 그려지는 존재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진다.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그런 신 같은 존재가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 존재는 드러나지 않아야 하며 그 말과 행동은 남지만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막연한 믿음의 실마리가 되어준다.


한국인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존재를 믿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 설정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드라마 속에서 설정으로 나오는 캐릭터나 재벌과 가난한 집의 여성과의 만남도 매우 비현실적이다. 만남이 있을 수가 없는 설정인데도 어떤 캐릭터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캐릭터는 완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면서 모든 것들이 이미 결정되는 것들이 있듯이 슈퍼맨등을 비롯한 메타휴먼들 역시 결정된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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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DC코믹스의 슈퍼맨이 등장했을 때의 배경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극단적인 대립이 있었을 때였다. 당시 크립토나이트를 제외하고 약점이 거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 슈퍼맨에 열광을 했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적이 없는 슈퍼맨에 식상해했다. 그리고 슈퍼맨은 힘에 대한 철학과 고찰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면서 새롭게 캐릭터가 채색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에 대해 간과한다. 힘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 말과 행동의 결과를 외면한다. 힘이 없어도 말과 행동은 아무렇지 않게 흩어지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간에 자신에게 돌아오지만 그걸 눈치채는 사람과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가진 힘과 주목도에 따라 어떤 존재는 반드시 그 결과를 책임지게 된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주게 되며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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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뿐만이 아니라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그 이면의 칼날을 맨손으로라도 죌 수 있는 책임감을 가질 때 비로소 남들 앞에 나설 수가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힘을 조금씩 나누어 특정 정치인에게 몰아준다. 왜냐하면 세상은 힘을 가진 존재가 불균형을 해소하고 거대한 에너지를 이끌어가야 되기 때문이다. 슈퍼맨이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처럼 보인다. 물론 크립토행성에서 날아온 태양에서 힘을 얻는 우주인이지만 그 힘조차조 왜 가질 자격이 있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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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거창하게 슈퍼맨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지 질문한 필요가 있다. 이 시대의 힘은 매스미디어에 기반해서 발생한다. 어떤 연예인이나 주목받는 SNS 인물들이 왜 그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니까 말과 행동을 할 뿐이다. 진실 같은 것이 필요 없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진 현대에서 결국에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걸 개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가 있을까.


올해 여름에 개봉하게 될 슈퍼맨은 세상을 파괴하는 적들에 맞서는 이야기로 ‘슈퍼맨’에서 역대급 씬스틸러로 활약하며 관객들의 뇌리에 박힐 ‘크립토’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올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로 떠오를지 기대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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