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의 할아버지 이계양이 지은 안동의 노송정종택 (온혜파 종택)
자식을 가장 잘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그 부모가 되는 사람들이 잘 만나야 한다. 엄청난 교육비와 고민 같은 것을 적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 됨됨이나 가능성을 보고 결혼을 해야 자식 역시 그 피를 이어받아 그 모습을 닮게 된다.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의 모습을 닮고 태어나는 것이 자식이다.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문종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을 때 사기에 살았던 이계양은 안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 더운 날 안동을 찾은 것은 퇴계 이황이 태어난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계양은 봉화라는 지역으로 부임을 받아 가는 길에 온혜리르 지나면서 주변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중턱에 앉아 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나가는 승려와 온혜라는 지역의 풍수에 대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계양은 스님과 함께 마을로 내려와서 둘러보았는데 스님이 주변을 살피다가 이 부근의 빈터를 가리키며 "여기에 집을 짓고 살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이계양이 고택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
온혜라는 지역에 자리 잡았기에 이 고택은 안동 진성이 씨 온혜파 종택이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노송정 종택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남다른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퇴계 이황으로 이계양의 손자였다.
퇴계 이황은 1501년 고택의 한가운데 있는 튀어나온 방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퇴계 태실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이다. 좋은 유전자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조선의 인물이기도 한 퇴계 이황 역시 대대로 그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본채의 중앙에 세 면을 계자난간으로 둘러 누각형식으로 독특하게 꾸민 곳이 퇴계 태실이며 동남쪽 모서리에 마루를 두어 큰 사랑과 작은사랑이 분리되어 있는데, 마루 위쪽에 온천정사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본채 동쪽에는' ㅡ'자형 건물이 노송정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오른쪽에는 사당이 있다. 온혜파 종택은 20세기 중반에 고쳐 지어졌으며 전체적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경상북도 민속 문화제 제60호 퇴계 태실로 지정되어 있다가 2018년 11월에 안동진성이 씨 온혜파 종택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 민속 문화재로 승급이 되었다.
유학과 관련되어 전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퇴계 이황의 이야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경남, 경북을 비롯하여 충북과 충남을 가더라도 퇴계 이황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안쪽에는 후손이 살고 있어서 잠시 대문을 통해 엿보기만 해 본다.
안동은 관광택시 코스를 올해 개편했는데 각각 5시간 코스와 7시간 코스를 만들어 이용 시간에 따라 코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안동의 깊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송정종택, 퇴계종택, 계상서당, 한서암, 퇴계선생 묘로 이뤄진 특별 코스도 추가했다고 하니 이곳도 방문해 볼 수가 있다.
걸어서 돌아보고 나오는데 멀리 세워둔 차가 보인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차가 이곳까지 와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의 조건이 아닌 그 사람 그릇을 보고 선택했던 과거에는 영민한 자식을 낳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후손을 위해 집터를 선택한 이계양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