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노성 지역은 파평윤 씨가 모여 살던 마을의 노성향교와 명재고택
지금이야 특정성씨가 모여사는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곳들은 그 이전 세대들부터 살아온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논산 하면 광산김 씨와 파평윤 씨, 은진송 씨들도 모여 살았던 마을이 있는데 명재 윤증이 살았던 명재고택 주변으로는 파평윤 씨가 모여 살았었다. 논산 노성 하면 파평윤 씨들이 모여 살았기에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윤 씨가 많다.
논산 노성을 찾은 것은 이 부근에 중국집이 괜찮은 곳이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가 노성면을 돌아보았다. 윤증은 윤선거의 아들로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었다. 노성이라는 지역은 예전에는 이성(泥城)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스승과의 마찰로 인해 결별하고 자신의 길을 걷게 된다.
윤증은 이곳에 살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윤증이 가르치던 아이들은 이런 한여름에도 근사록을 읽었다고 한다. 윤증은 제자들이 읽는 글을 들으며 더위에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다잡다 보니 무더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성면은 파평윤 씨들의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명재고택을 비롯하여 파평윤 씨 종학당, 파평윤 씨 재실, 유봉영당, 윤창세선생 묘소 일원, 윤환성생 고택, 윤황선생 재실, 노성산성, 애향공원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파평윤 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노성선비길은 노성면을 돌아보는 길이다. 논산시 노성면은 누군가가 어디로 떠나면 곧 알야채릴만큼 서로를 잘 아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유학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있지만 옛 흔적을 간직한 명재고택이 남아 있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여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에도 여전히 삶을 계속이 되고 있다. 노성은 열린 마을을 지향하고 있다. 명재고택 역시 담이 없어서 누구나 왔다가도 아무도 제지를 하지 않는다.
주변에 윤 씨가 많지가 않지만 가끔씩 파평윤 씨를 만나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파평윤 씨는 경기도 파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경기도 파주는 본래 고구려 장수왕 때 '파해평사현'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인 파평현으로 고쳤다.
한낮의 열기를 뒤로하고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쉬어도 한 잔의 시원한 커피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여름색이 유달리 더 강렬한 이곳은 한옥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만끽해 볼 수가 있다.
명재윤증고택을 뒤로하고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 본다. 광채를 안채와 빗겨 배치한 구조는 바람과 햇빛, 비 등을 고려한 주거배치를 돋보이게 한다.
윤증고택에서 더 위쪽으로 올라오면 애향공원이 지라히고 있다.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파평윤 씨의 후손들은 대도시로 나가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기리며 이곳에 공원을 조성을 해두었다.
애향공원에는 다목적 잔디광장, 야외무대, 출렁다리, 풍류마당, 전통 조형물인 선비상, 그리고 계절별 식재와 테마 조명이 배치되어 있다.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고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기도 하다.
위쪽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노성향교의 홍살문이 눈에 뜨여서 멈추어보았다. 집성촌에 거주하고 있었던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면서 자라났던 공간이었다. 이제 집성촌이라는 의미는 퇴색이 되었지만 매년 피어나는 백일홍처럼 꽃 피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기기에 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