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 방문해 보면 좋을 옥천군의 대표적인 고택 육영수 생가
육씨는 군 단위 지자체의 인구가 안될 정도로 적은 성씨이기도 하다. 고려가 통일이 될 때 통일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공도 적지가 않았다. 후삼국시대에 신라는 고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하였다. 경순왕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으로 통일신라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고려에 항복한 뒤에 왕건(王建)의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와 다시 결혼하였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부마로 육보라는 사람이 있었다. 중국의 오대십국시대에 당나라를 계승한다는 ㅡ이미로 세워진 후당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중국 역사상 마지막으로 낙양에 도읍을 정한 후당은 후삼국시대가 끝을 맺을 맺게 되는데 이 시기 육보는 한반도로 왔다.
그렇게 927년에 귀화하여 한반도에 와서 경순왕의 부마가 되었던 육보는 이곳 옥천군을 본관으로 하는 옥천 육씨의 시조가 된다. 옥천군에 자리를 잡은 옥천 육씨는 이 지역에서 적지 않은 부를 누리면서 대대로 살아오게 된다.
옥천 육씨로 알려진 대표적인 사람은 육영수여사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육영수 여사는 옥천에서 1925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벌써 100년이 되었다. 그렇게 보면 상당히 오랜 기간은 아니다. 일찍 세상을 떠나서 옛사람처럼 생각되기는 한다.
원래 육영수 여사의 집은 아니었는데 민정승의 후손이 대대로 거주하던 고택을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 씨가 1920년에 매입하였다. 건물의 배치는 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사랑채 터가 있고 그 뒤에 안채 터가 있으며, 청기와 지붕의 사당과 별당 터가 있다.
고택은 꽤나 넓은 공간에 여러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의 건물들만 보아도 얼마나 큰 부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가 있다.
옥천 육씨집안의 이름 있는 문벌집안에서 태어난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조총련계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그날의 일도 광복절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소박하게 자리한 정지용 생가와는 규모자체가 비교가 안 되는 상당한 규모의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집이라는 것은 정신과 품격이 스며든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의 고택은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한 품격 있고 고풍스러우며 큰 한옥이다.
사람의 삶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는 곳에서 전통 건축미를 느낄 수도 있다. 풍류를 즐기듯이 하루를 힐링하고 떠가는 구름처럼 자신을 찾는 여행을 하기에 좋은 때 다과와 꽃차를 마시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다.
육영수 생가의 앞에는 연꽃들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매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품격 있고 여유로운 한옥의 정취 속에서 특별한 휴식을 취해볼 수가 있다. 고택이 있는 옥천군의 구읍을 거닐면서 넉넉했던 옥천 육씨의 과거는 어떠했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