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8도 감영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시대 본래 모습을 간직한 강원감영
지자체를 운영하는 청사는 정치적인 공간이며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잉여생산물이 생산되면서 정치는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다양한 자원이 모이게 되고 모두 소비하지 않지만 필요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를 해야 한다.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정치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런 공간이 바로 청사다.
주변에는 큰 건물들과 주거공간이 자리한 곳의 한가운데에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이 원주시에 자리한 강원감영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대한제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500여 년 동안 강원도 행정과 정치의 심장부였던 곳이다.
강원 감영에 들어서게 되면 처음 보이는 건물은 포정루로 어진 정사를 베푼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포정루를 지나가서 중삼문과 내삼문을 지나치게 되면 강원도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이 나온다.
선화당이란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전국 8도에 자리한 감영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시대 본래의 집무실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전기 문신인 황희,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도 관찰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행정적으로 구분이 되어 있어서 지자체는 행정과 조세 그리고 교육등을 관할하였지만 과거에는 지방의 관찰사가 강원도의 조세, 군사, 교육, 사법, 행정등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관찰사의 소재지로 1395년(태조 4년)에 처음 감영이 설치되었으며, 1895년(고종 32년)에 8 도제 종식되고 새로 23부제가 실시될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존속하였다.
강원감영에는 선화당(宣化堂) 종 2품 관찰사 업무 공간을 비롯하여 청음당(淸陰堂 관찰사를 보좌하는 종 5품 도사(都事)의 업무 공간), 대은당(戴恩堂 관찰사 가족의 생활공간인 내아(內衙)의 중심 건물), 관풍각(觀風閣 감영 후원의 연못에 있던 누각), 봉래각(蓬萊閣 감영 후원의 연못에 있던 누각), 영리청(營吏廳 감영에서 일하는 아전의 업무 공간), 포정문(布政門 감영 정문)이 남아 있다.
강원 감영의 핵심적인 공간은 바로 이곳이다. 관찰사가 휴식을 취하고, 이따금 배를 띄워 연회를 즐겼던 후원으로 일각문을 지나면 나온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은 시민들이 호젓한 정취를 느끼는 도심 속 낙원으로 커다란 연못에 두 개의 누각과 정자가 배치가 되어 있다.
연잎이 펼쳐진 모습이 과거에 강원 감영에서 백성들을 위한 어진 정치의 넓이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현재 강원감영의 총면적은 1만㎡에 조금 못 미친다. 하지만 여지도서 기록에서 건물 수가 27동 총 505칸에 달하는 것을 감안할 때 총면적이 3만㎡는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첫 '원주시-이전공공기관 협의체 정기회의' 일환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은 원주시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강원감영 유래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었다.
2002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39호 원주강원감영지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7월 28일 원주 강원감영으로 사적 명칭이 변경된 이곳에서는 매년 10월에 강원감영제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에도 정치는 시끄럽지만 과거에도 시끄러웠던 가운데 사람들의 삶에 부족함을 해소해 주는 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