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세기의 한 지역을 이끌었던 태백시의 산업현장
강원도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산업은 탄광이다. 석유나 천연가스가 거의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도 석탄은 많이 생산이 된다. 특히 강원도 산악지역은 탄광이 많이 있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였고 그걸 기반으로 적지 않은 사람이 몰려서 살았다. 태백시 산업 구조의 중심이었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은 지 일 년여가 지나가고 있다. 태백시는 탄광을 대신하는 대체산업으로 청정메탄올 생산시설 등을 구축하는 경제진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탄광이 활성화되었을 때 태백시에서는 마을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는데 철암탄광역사촌이라는 곳이 그런 마을이었던 곳이다. 철암탄광역사촌은 옛 탄광촌 상가들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생활사박물관으로 철암천변을 따라 이어지는 주택 및 상가 건물은 1980년대 탄광촌의 모습을 그대로 안고 있는데, 밖에서 보면 폐점한 가게로 보이지만 건물 안에는 탄광의 역사를 담은 전시공간을 볼 수가 있다.
광부들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었던 그 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곳이다. 아래쪽에는 당시에 생산했던 석탄의 모습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석탄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석탄 발전소는 지금도 운영이 되고 있다. 오늘날 남아있는 석탄의 양은 앞으로 15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하는데 약 250년 전에 석탄은 산업 혁명을 이끈 증기 엔진을 가동하는 주요 연료이기도 했다.
주거공간이 부족하던 시절 하천 바닥에 지지대를 만들고 주거공간을 넓힌 까치발 건물의 안에는 잊혀가는 석탄산업의 역사와 광부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에서 영업을 하던 한양다방에는 까치발의 방, 자연의 방, 희망의 방, 봉화식당에는 Art of 철암, 오래된 풍경, 석탄의 방, 진주성에는 철암 다큐멘터리, 복합문화공간, 관광객 쉼터, 호남슈퍼에는 철암 마을 전망대, 철암의 얼굴, 태박의 창, 호남슈퍼 갤러리, 벤치에는 관람안내도와 생활 속 들여다보기 등이 조성이 되어 있다.
사람은 사라지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은 서울의 명동이나 종로만큼 사람이 북적대던 태백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건 액화가스가 보편화하면서부터였다.
강원도 태백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으니 이곳의 모습은 필자의 기억에는 없다. 파마를 한 그때의 진풍경.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다가 밖으로 나왔더니 탄광으로 출근하는 아빠와 그를 배웅하는 아이를 업은 아내의 모습들도 볼 수가 있다.
철암의 변화를 보기 위해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다. 탄광촌은 가장인 남편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생존이 가능했던 열악한 사회 구조였기에 탄광은 도시 주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이는 경제적 막장이었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장성광업소 산하로 1939년부터 가동된, 우리나라 최초의 선탄시설로 2002년 5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가 됐다.
태백시는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사람이 모여 살던 곳이어서 그런지 사람냄새가 난다.
지금처럼 노동자의 인권을 말했던 시대가 아니어서 탄광이 있었던 곳은 막장이라는 말에 걸맞게 모순의 공간이면서 사고가 빈번했지만 대한민국 산업의 희망이었던 곳이었다. 탄가루 마시며 뼈 빠지게 일해 돈을 싸안고 돌아갈 꿈을 가지고 살았던 지역의 정체성이 이곳에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