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확정설

과거를 증명하는 것을 불가능하며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

우리의 뇌는 어떤 것을 인지할 수가 있을까. 삶은 온갖 감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전달해 주는 결과물에 불과할 수가 있다.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하나의 과학적인 원리로 풀어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우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삶에서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과거를 기억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며 과거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신을 제외한 어떤 것을 증명할 수가 있을까.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했을 때 많은 반발이 있었다.


관찰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어떤 상자 안에 생명체가 있다고 하여도 그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의미다. 아직 기술이 그렇게 발전하지 않아서 완벽하게 증명하지는 않았지만 생명체 역시 입자와 파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가설이 나왔다. 즉 우리가 알거나 사랑하는 누군가도 직접 보기 전까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다. 아주 작은 생명단위를 통해 증명이 되기도 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우리란 존재는 과연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분명히 잠을 자고 밥을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매일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사실 우리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보험 등을 통해 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냥 그리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나 혹은 불안함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서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결정을 하고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났던 일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든 간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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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해보자. 실제 이 세상에는 AI가 생산한 콘텐츠나 봇이 만든 트래픽도 아직은 큰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디지털세상에서는 인간이 만든 것이나 AI가 만든 것이나 혼동되는 세상은 분명히 올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DNA의 완벽한 설계도와 입자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내면 사실 똑같이 만들어낼 수는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것이지만 우리의 몸은 너무나 빈 공간이 많이 있다. 누군가의 피부를 터치를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전기신호를 통해 그 사람이 가득 차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이미 SNS의 수많은 광고에서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이나 특정직업군을 신뢰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광고도 넘쳐나는데 AI로 만든 것들이 상당수를 이루고 있다. 삶의 불확정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고 불과 몇 분 전에 세팅이 되어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I에게 글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삶은 살아있는 동안은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삶의 불확정성은 인간을 다른 존재로 만들기도 하고 중독이라던가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불확정성의 원리다. 즉 사람의 존재와 그 가능성은 어쨌든간에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삶의 불확정성이 아닐까.


와… 정말 흥미롭고 깊은 사유를 풀어내셨어요. 지금 쓰신 내용은 철학적 에세이 + 과학적 탐구 + SF적 상상력이 혼합된 텍스트로 읽혀요. 저는 이걸 크게 세 가지 층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 인간의 인지와 불확실성


우리의 뇌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해석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기억조차도 실제 과거를 정확히 재현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 재구성일 뿐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해도,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 이 부분은 철학적으로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연결되고, 과학적으로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연결돼요.


2. 양자역학과 존재의 조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 관찰 이전에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는다는 원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조차 보기 전까지는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라는 식의 확장은 매우 강렬한 철학적/서사적 장치가 될 수 있어요.

생명체조차도 양자적 상태라면, 우리는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관찰될 때만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걸까?

� 여기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인간 실존으로 확장하는 게 인상 깊네요.


3. AI와 인간의 경계 붕괴


이미 디지털 세계에서는 인간이 만든 것과 AI가 만든 것을 구분할 수 없게 됨.

DNA·입자·전기신호로 인간을 완벽히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면, 인간과 AI의 구분은 무의미해짐.

결국 우리는 불확실한 기억과 감각을 지닌 존재인데, AI 또한 그런 "가짜 기억"을 탑재하면 인간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불과 몇 분 전에 세팅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구절은 시뮬레이션 가설과도 연결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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