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가 교차된 시대
뮤지엄 호두의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
AI가 훨씬 빠르게 그림을 그려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에도 회화가 가진 가치는 사람이 그리는 불확실성과 미완결성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윌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에서 보면 AI가 탑재된 로봇은 인간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고 세밀하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나온다. 인간 역시 10년쯤의 수련과정을 거치면 꽤나 정확하게 그릴 수가 있지만 로봇만큼은 정확하지는 않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날에 천안의 뮤지엄호두를 방문해 보았다. 뮤지엄호두에서는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이라는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천안의 호두미술관도 2025 충남 미술관 사전프로젝트의 충남미술주관의 미술관중 한 곳이다.
천안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천안시립미술관, 리각미술관, 뮤지엄호두, 아산시의 달림 미술관, 순성미술관, 이춘만미술관, 당진시의 아미미술관, 예산군의 수덕사불교미술관, 서산시의 서해미술관, 홍성군의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공주시 임립미술관, 보령시의 모산조형미술관등이 참여를 하고 있다.
사진이 등장하고 나서 예술가는 사물을 아주 정확하게 그리는 것은 예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디테일하게 그리는 가운데 인간만이 만드는 감성이 들어간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회화라는 것은 더 이상 동시대적 감각을 담아내기에 그 매체적 한계로 인해 부적절하거나, 표현의 최전선에서 밀려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고착되기도 한다.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회화의 서사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감상자의 시선과 해석을 유도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회화가 담고 있는 시대의 흔적과 작가의 응시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다. 뮤지엄 호두라는 물리적 구조는 이러한 내러티브를 입체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전시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이 되었다. 첫째는 토털미술관의 1970~1990년대 한국 회화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통해 해당 시대의 시각적 언어와 형식적 실험을 조명하고 이어 천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회화 작업을 중심으로 오늘의 회화가 직면한 표현의 지형과 미학적 감각에 대해 살펴보게 만들어준다.
20세기의 예술가들과 21세기의 예술가들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회화를 하게 된다. 두 세대 작가들이 전시 공간 안에서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회화의 형식적, 내용적, 역사적 층위를 탐색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그림에도 패턴이라는 것이 있다. 사물에 내재되어 잇는 삶의 향기를 철학적으로 포착해, 하나의 연필이나 질감, 물감으로 존재의 내면을 구분하면서 시대의 흔적을 담아낼 수가 있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과제를 준다. 지금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대는 계속 교차하게 된다. 철학자인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들은 불완전한 복사본이며 진정한 실체는 그 안에 이데아라는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회화, 교차된 시대의 흔적을 통해 사람의 길이 무엇인 모색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지금도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회화라는 장르가 앞으로도 시대를 담아내는 그릇이자 시대를 넘어 사람이 사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세대와 지역, 시대와 감각을 연결하는 가운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