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찻사발의 출발점
8대를 내려오는 동안 문경에서 계속 한국만의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 있다. 문경새재의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문경 백자 8대 명문가라는 조선 요가 있는데 이곳에서 문경의 자기가 퍼져나갔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오래전부터 자기를 굽는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왔는데 그 기술은 중국, 조선, 베트남, 캄보디아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은 도자기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이지만 그 역사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시작이 된다. 조선의 찻사발은 지금 문경이 겨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유물은 16세기 이후로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의 차문화 쇠퇴와 함께 발전이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상당수는 왕실이나 양반가에서 주로 사용하였지만 민간에서 사용하는 사발은 다양한 곳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미적 가치가 높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장인이 같은 흙으로 만들어도 빛깔이 다르고 그 완성도도 차이가 난다. 지금도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한국 사람들은 차 문화에 대해 익숙하지가 않다. 그러나 차 문화는 오히려 일본이나 유럽에서 더 고급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즐긴다. 차를 즐기고 그 속에서 풍류를 즐겼던 고려인들은 백성에서 왕까지 차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이었다.
8대에 걸쳐 도자기와 찻사발을 빚는 조선요에서는 다양한 용도의 그릇을 빚어낸다. 우주를 담을 수 있는 철학과 사유가 서린 선의 결정체인 사발은 사람과 비슷한 면이 있다. 사람이라면 새로운 삶을 꿈꾼다.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관음리에 조선요가 문을 연 것은 공식적으로 1843년 9월 김영수에 의해 축조된 망댕이사기가마 (경북 민속자료 제135호)가 위치한 곳이다. 시작의 연원을 살펴보면 160여 년 전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한다. 경주 김씨 계림군파의 20대 손으로 그의 일족이 문경 일대에 정착한 것은 12대 김영만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 다른 곳 등에서 사기장 활동을 하다가 경주 김씨 계림군파 13대손인 김취정 씨를 시작으로 현재 20대인 김영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경의 도자문화는 사토와 유약토 같은 도자기 재료와 땔감인 소나무가 풍부하고 강이 발달되어 있는 지리적 우수성을 통해 문경의 도자문화는 예전부터 발달해 왔다. 고려청자 가마터 4개소, 분청사기 가마터 1개소, 백자 가마터 76개소 등 총 80여 개소의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찻사발 문화가 내려온 문경은 일본 사람들도 자주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유명한 이도다완은 일본 전국 시대 당시 지방의 다이묘였던 츠츠이준케이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미움을 받아 성을 빼앗길 위험에 처했을 때 조선에서 건너온 다완을 건네주어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조선의 민간 가마에서 만들어진 이도다완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문경에 입향한 김영만에서 시작해 1대 김취정은 조선백자 종가를 시작하여 2대 김광표, 3대 김영수, 4대 김낙집, 5대 김운희, 6대 김교수, 7대 김천만, 현재 김영식에게로 이어졌다고 한다. 설명해주는 사기장 김영식 선생의 집안에는 많은 자료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특히 지규식이 쓴 하재일기는 양근 분원에서 만든 각종 그릇을 궁궐과 과청에 납품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1891년부터 1911년까지 20여 년간에 걸친 기록으로 그 속에는 망댕이 가마를 축조한 사실이 담겨 있다.
하재일기8계묘년 (1903년) 4월
초 10일 갑오.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리고 비를 뿌림..... 가마가 무너진 곳에 문경 김비안을 시켜 망댕이가마 2칸을 축조하게 하였다.
대를 이어온 많은 도자기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문경지역에 대를 이어 왕실자기 생산을 해오던 가업은 할아버지인 김교수에서 문경지역이 전통도자문화의 산실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조선요가 조선의 도자문화를 계승했을 뿐만이 아니라 문경 지역의 여러 장인들에게 기술을 전파하고 문경 찻사발 문화가 자리 잡게 만들었다고 한다.
문경 찻사발 도자문화의 시작점인 조선요는 문경의 도자 생산 역사를 대변하며 현재 조선요를 운영하는 8대 김영식은 조선요가 창업한 1843년으로부터 1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문경 망댕이가마의 전통 계승자라고 한다.
좋은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맥이 끊기면 그때의 기술을 온전히 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길게는 조선중기부터 가깝게는 19세기 초반에 시작된 이곳 도자기술은 맥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 깊은 맛을 나타내지 못하는 다른 곳과 차별성이 있다고 한다.
서민들 전용의 그릇을 빚어내던 민요(民窯)에서 생산된 문경 막사발은 투박하면서도 순수함의 결정체다. 일본인들은 조선으로부터 전래된 찻사발을 다완으로 총칭하는데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조선에서 건너간 막사발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의 사기가 우리나라의 도자문화를 점령한 시기에 문경만은 '왜사기' 침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문경에는 8대에 걸쳐 조선 도자문화를 이어온 김경식 선생뿐만이 아니라 이도다완을 재현해낸 '마지막 조선 도공'인 천한봉 선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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