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관으로 창녕의 역사와 비화가야가 담긴 창녕박물관
1,000년쯤 지난 미래에 인류가 존재한다면 현재 인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을 할까. 그 시대에는 지금 사람들이 하고 있는 고민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전혀 다른 고민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대형고분은 그 지역 최고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인의 삶과 죽음,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신념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할 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1,500년 전 주인을 따라 순장된 비화가야의 16세 소녀 송현이도 순장으로 무덤 속에 묻히게 된다.
창녕박물관 인근에는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동쪽, 신라와 경계를 이루던 곳으로 5세기 이후에는 신라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비화(非火)는 고대 가야지역으로 현재 경남 창녕이다. 6세기 중엽쯤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창녕박물관 인근, 사적 제514호로 지정된 교동·송현동 고분군. 그곳은 비화가야의 역사를 말하는 자리다
창녕박물관은 지난 9월 상설전시실 전시 환경 개선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이번 개편은 지난해 창녕박물관 상설전시실 도입부 개편에 이어 후반부 노후화된 전시 환경을 개선하고, 더욱 다채로운 콘텐츠를 보강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뤄졌다고 한다.
개편된 공간의 전시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물 150여 점으로 구성됐으며, 특히 대형 토기 진열장을 전시실 중앙에 배치하여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계성고분군 등 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형 토기들을 전시해 두었다.
상설전시실로 들어가 본다. 최근에 창녕지역의 가야 고분에서 처음 확인된 청동 숟가락은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백제 무령왕릉 등 일부 고분군에서만 출토될 정도로 출토사례가 적다고 한다.
사후세계가 반드시 있다고 믿었던 세상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대의 사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단서로 개의 순장 흔적도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토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지만, 한때는 죽은 자를 지키는 존재로서 동물이 함께 묻히는 관습이 있었다.
2007년 12월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에서 창녕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15~17호분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송현동 15호분의 주인공과 함께 네 명의 순장자가 확인되었는데 가장 안쪽에 있는 인골은 도굴의 피해가 적어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인골의 주인공은 바로 비화가야 16세 소녀인 송현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가야 유물이 도굴로 사라졌다고 한다. 창녕박물관에는 금귀걸이, 금동뿔잔, 청동함 등 문화의 꽃을 피웠던 비화의 유물이 많다. 정(井), 생(生), 대간(大干)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토기도 있으며 신라 토기에는 한자가 새겨진 것이 많으므로 신라와 교류했던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랜 시간 국가로 존재했었던 가야는 서기 42년에 건국된 깊은 시간을 품은 나라로 도굴되지 않은 제63호 고분은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금동관, 은반지, 허리띠, 그리고 붉은 칠의 흔적과 머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안치된 시신. 그 곁에는 부장품 공간과 순장을 위한 공간이 함께 나뉘어 있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변한 12국 중의 하나로 전하는 불사국은 비화가야의 모태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라가 창녕 지역에 555년(진흥왕 16) 비사벌주를 설치하고, 561년에는 창녕진흥왕순수비를 세운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신라에 병합되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사라지지 않는 물질은 오래전부터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금이 수천 년간 사랑을 받고 영원한 화폐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야의 성장 기반은 철이었는데 철의 등장과 사용은 고대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힘이었다. 가야에서 생산한 철은 화폐처럼 쓰였으며, 이웃나라에 수출되기도 한다. 말의 갑옷과 투구는 당시 가야의 철제 기술을 엿볼 수 있는데 소유자의 정치.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거나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창녕지역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5세기에 축조된 고분은 구릉지 능선에 따라 위치하고, 6세기 축조된 고분은 구릉지 동쪽 사면에 위치한다. 이 고분에서는 금동관을 포함한 장신구, 각종 철제무기류 및 농공구류, 금속용기류, 토기류 등 엄청난 양과 최상급의 유물이 출퇴되었다고 하나도. 창녕박물관 운영시간은 매주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과 설날·추석으로 자세한 사항은 창녕군 박물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창녕의 박물관에는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뿐만이 아니라 창녕의 다양한 역사적인 흔적을 살펴볼 수가 있다. 창녕은 다양한 문화유산과 장일, 조익청, 신돈, 성사제 등 고려시대에 뛰어난 인재들이 배출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이전에도 교육적 기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창녕박물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창밀로 34
055-530-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