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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이 잠든 연무

역사와 국방산단으로 미래 100년 먹거리로 만들어가는 연무읍

논산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는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문경시 가은읍이라는 곳이 있다. 약 100여 년 동안 왕건 등과 더불어 후삼국시대를 이끌던 견훤이 그곳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설화 등도 전해지고 있지만 견훤은 통일신라시대에 적지 않은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성여왕 시기 신라의 국정이 문란해지면서 지방의 곳곳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고 궁예와 같은 사람과 호족이 조정에 대항해 자기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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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지역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접점이 있었던 곳으로 견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무 지역은 논산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국방산단은 논산시 연무읍 동산·죽본리 일원 87만㎡(26만 평)의 부지에 K-방산을 견인하며 미래 100년 먹거리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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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읍의 중심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가볍게 연무공원을 돌아본다. 주차공간과 더불어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육군훈련소가 있는 힐링숲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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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로 특화된 논산지역은 스마트한 농업과 더불어 국방산단, 논산세계딸기산업엑스포, 케이(K)-헤리티지 밸리 조성 등의 굵직굵직한 산업기반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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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읍에는 논산을 대표하는 여러 관광지가 자리하고 있지만 필자가 방문했던 날은 견훤의 흔적이 있는 견훤릉을 찾아서 가는 길이었다. 견훤은 통일신라에서 나름의 공을 세우고 비장 벼슬에 올랐지만 낮은 벼슬이었다. 그러던 중에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에 기반을 마련해서 백제의 맥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후백제를 건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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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에 견훤은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서남부 여러 성을 공격하고 무진주(지금의 광주)를 점령하고 중국의 오월에 사신을 보내 국교를 맺고 영토를 넓히면서 나라의 꼴을 갖추어 나가게 된다. 이때만 하더라도 궁예와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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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왕릉은 다른 왕들보다는 조금은 소박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여러 기록에는 은진현 남쪽 풍계촌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 18-3 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견훤은 통일할 자식으로 금강을 보았지만 장남이었던 신검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후백제의 왕 견훤(甄萱)은 935년 아들 신검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936년 고려 왕건에게 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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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이 유언을 남겼다면 자신이 나라를 세운 전주나 광주 또는 자신이 태어난 문경지에다 묻어 달라고 하기보다, 나라를 세웠지만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 회한을 품고 자신이 죽은 황산의 불사 근처에 묻어 달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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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왕들의 무덤보다는 마치 귀족의 무덤처럼 보이는 규모다. 10세기경에 축조한, 지름 10m, 높이 5m, 둘레 83m의 봉분은 1981년 12월 21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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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에도 견훤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역사스토리텔링을 해도 괜찮지 않은가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역사는 지나갔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좋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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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한 사람의 기록이라고 했지만 견훤의 삶을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볼 수가 있다. 비록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국가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명대로는 살았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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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이 원했던 것처럼 금강이 왕위에 올랐다면 달라질 수가 있었을까. 연무읍을 방문했다면 이곳 견훤왕릉을 방문해서 패배한 군주의 측면보다는 왜 그 시대에 그렇게 결정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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