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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다, 길을 내다

천안시립미술관의 전통과 실험 사이,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시작

그림을 배울 때 단면에서 공간감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구도를 배우게 된다. 이 구도는 건축도면을 그릴 때도 사용되기 때문에 건축도면을 그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지식을 알 수가 있다. 대각선으로 구성된 공간은 깊이감을 더하면서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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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미술관에서는 올해가 가기 전에 커넥트 인 천안 길을 묻다, 길을 내다는 주제로 서예가 취묵헌 인영선의 전통화 실험 사이, 필묵의 여정, 화가이며 디자이너인 문우식의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시작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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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부터 12월 21일까지 천안시립미술관에 마련되는 이번 전시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내어가면서 살아왔던 두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화가이자 디자이너였던 문우식과 서예가 인영선이 남긴 궤적을 병치하며 한국 미술과 서예의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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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는 필묵으로 이야기하였고 다른 예술가는 자신만의 그림으로 이야기했지만 다른 매체로 구축한 시각 언어와 필묵의 문법은 현재의 제작 환경과 관람 경험 속에서도 공통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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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가의 유산을 동시대 관람 환경에 맞게 재맥락화하고 학술·아카이브·교육 프로그램과 연동해 시민 체감으로 환류하는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 천안문화재단의 ‘커넥트 인 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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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만나는 예술가인 인영선은 전통의 격조를 토대로 현대적 조형을 개척했는데 전통 서예의 법을 스스로 깨우친 예술가로, 필묵의 실험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독창적 조형세계를 완성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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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마다 서예의 기본기를 체계적으로 다져나간 20~30대의 시기의 서체를 구축해 나갔으며 50대 이후로는 표현의 폭이 한층 넓어지며, 자유롭고 조형적인 서풍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서예가 단순한 전통 예술을 넘어 현대적 사유와 미학을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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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서 만나보는 작품의 예술가인 문우식은 전후 재건기의 공기를 통과해 산업화의 속도를 견디며 활동했다고 한다. 그림은 하나의 연필로 그리기도 하고 물이 섞이는 수채화 혹은 기름으로 그리는 유화로 그리기도 한다. 모두 화가들의 성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제1섹션에서는 유화 작업을 중점적으로 조명한 전후 모더니즘의 서막, 제2섹션에는 회화의 경계를 넘어 관광포스터와 디자인으로 활동한 시각문화의 현대화, 제3섹션에서는 1990년대 이후 다시 수채화로 돌아가 기억의 미학과 회화적 귀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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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식의 예술 세게는 회화와 디자인, 예술과 실용,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비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간 예술의 길은 노년에는 다시 삶의 본질로 회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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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과 서예사의 중요한 지점을 되짚으며, 예술이 길을 묻고 또 길을 내는 행위임을 관람객과 함께 성찰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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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는 물과 색이 어우러지기에 유화와는 다른 부드러움이 묻어 있다. 섬세한 수채화를 통해서 기억과 시간, 삶의 흔적을 그리며 존재의 근원을 되묻는 회화적 언어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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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들은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도달점은 같다. 전시전을 보면서 관람하는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보고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이 머무는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천안 시립미술관의 길을 묻다, 길을 내다 전시전은 올해 12월 21일까지 만나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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