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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 권욱, 윤봉구의 영정을 모신 제천의 황강영당

마음의 무늬를 새긴다는 말이 있던가. 어떤 사람은 소박하면서도 고결한 삶을 살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왔다.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은 그냥 소박하면서도 할 말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 우암 송시열이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나온 물건들은 그 사람을 닮는다고 했던가. 겨울에 가까워지니 생명력에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느끼게 해주는 소나무가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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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볼 수 있는 이곳에 황강영당 및 수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황강영당 및 수암사는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황강 영당은 조선 주자학의 대가인 송시열과 그의 제자인 권상하와 권상하의 제자 한원진, 윤봉구, 권욱의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과 수암 권상하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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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영당은 위쪽에 자리하고 있고 아래쪽에는 꽤나 여유가 있다. 황강영당의 전의 이름이었던 황강 서원은 1726년에 건립하고 다음 해에 사액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황강 서원은 권상하의 거주 공간인 한수재에 소재한 것이 아니라 한수재로부터 황강 상류 지역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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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면서 한수재의 서재로 사용하던 건물에 영정을 봉안하면서 황강 영당이라 하였다.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 지구로 편입되면서 1983년 현재의 위치인 송계리로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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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영당은 말 그대로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그 생각의 흐름을 기리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소나무와 우암 송시열. 고담(枯淡)한 야취(野趣)와 수수한 활기, 정중하고 고결하고 근엄한 인상이 분명히 서로 닮았다고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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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영당에 있었던 초상중 권상하의 초상은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권상하(1641∼1721)는 우암(尤庵) 송시열(1607∼1689)의 제자이자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로 꼽히는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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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황강영당에 봉안된 그의 초상에는 '한수옹(권상하를 뜻함) 79세 진영'(寒水翁七十九歲眞)이라는 문구가 남아 있어 79세 때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상당히 장수를 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 많이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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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재위 1674∼1720)의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제작할 때 참여한 화원 김진여(1675∼1760)가 1719년 그렸으며, 부드러운 필선과 입체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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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 영당은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팔작지붕이다. 수암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후기 정치사적 영향에 따라 서원으로 사액까지 받았으나 영당으로 바뀌게 된 사례로서, 서원 철폐령 이후 서원 건축의 잔존 양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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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라졌지만 그 생각은 남아있고 높은 벼슬에 올랐어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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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모셔진 권상하는 조카인 권섭을 가르쳤다고 한다. 권섭은 출세를 뒤로하고 여행과 글을 선택했으며 구십 평생 전국을 여행하며 보고 겪은 바를 시, 시조, 가사, 여행기인 유행록(遊行錄), 꿈 이야기인 기몽설(記夢說) 등 글로 남겼다고 한다. 권섭은 제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런 삶을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여행자의 덤덤한 시선으로 제천의 황강 영당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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