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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얻은 마음

단풍으로 호사했던 시간은 가고 공주의 마음이 머문 제천 덕주사

모든 종교는 그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자리를 잡게 된다. 사람이 무엇을 믿느냐는 어떻게 바뀔 수가 있을까. 4세기경 신라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토속신앙이 강한 나라여서 불교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신라에 불교가 자리 잡게 한 아도화상은 당시 신라의 공주가 병이 들었을 때 건넨 향낭으로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자 이 기적으로 신라 왕과 백성이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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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에 가면 덕주사라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 남아 있다. 이곳에도 신라의 공주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불교가 신라에 자리를 잡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신라왕실도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제천의 덕주사가 자리한 곳에는 체마가 있는 덕주 역사 자연관찰로도 조성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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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월악산에는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가 동생인 마의태자와 함께 들렀다 세운 덕주사는 불교를 믿어왔던 신라의 이야기가 흔적을 남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이기는 하지만 제천 덕주사에는 푸른 소나무가 있어서 겨울의 애잔한 느낌은 들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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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제천의 덕주사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산신각이 자리한 곳이었다. 다른 사찰들은 산신각을 작게 조성하던지 조금은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제천 월악산 덕주사는 산신각을 잘 조성을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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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을 여행할 때는 동서남북을 정해서 여행을 해보아도 좋다. 북쪽에는 덕동생태숲이나 박달재 휴양림, 배론성지가. 시내에는 의림지와 한방치유숲길, 청풍호가 있는 곳에는 문화재단지와 국립제천치유의 숲이 있고 남쪽으로 오면 월악산 국립공원과 덕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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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종교를 믿었다. 신라는 사라졌지만 덕주공주는 이곳 제천에 와서 어떤 마음으로 사찰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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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 월악산이 자리한 곳의 지명은 한수면으로 험준한 월악산 골짜기가 자리하고 있다. 한수면의 한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기호학파의 적통을 잇는 권상하(1641~1721)의 호 ‘한수재(寒水齋)’에서 따왔다고 한다. 기암절벽이 치솟아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왔기에 덕주공주도 남다른 기운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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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의 산신각을 돌아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본다. 예전사찰규모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적당하게 넉넉하고 적당하게 여유가 있는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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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는 1951년 한국전쟁 중 작전상의 이유로 소각됐고, 지금은 대웅보전과 스님의 처소만 갖춘 산중의 작은 절이다.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고 나라 잃은 비운의 감정에 휩싸였을 덕주공주는 이곳에서 남다른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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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 가는 길에 학소대와 동문을 함께 볼 수 있고, 송계계곡 망폭대 옆에 남문이 있는데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쌓은 덕주산성은 이 길목을 차단하는 성이다.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조선 시대에 세운 남ㆍ동ㆍ북 3개 성문을 복원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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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의 입구에는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범자비가 세워져 있다. 대불정주범자비는 인도의 옛 문자인 범자가 새겨진 비석이다. 비석에는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의 능엄주가 새겨져 있다. 능업주는 능엄경에 있는 대불정여래의 깨달음을 설한 427구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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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란 자체에 무궁한 뜻이 있어 이를 외는 사람은 한없는 기억력을 얻고 모든 재액에서 벗어나는 등 많은 공덕을 받는다고 한다. 덕주공주는 이곳 제천에서 신라를 떠나 버리고 얻은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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