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괜찮은 것인가.
소련이라는 국가는 이제 지구 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반세기가 넘도록 자본주의 최강국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술의 선두를 달리던 국가가 바로 소련이다. 소련의 기술강국의 이면에는 개개인을 철저하게 도구로 사용하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수준을 형편없이 낮춘 결과에 기인했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사례는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여론을 조작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생각을 개조하는 것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책은 로렌 그레이엄이 스탈린이 권력을 공고하게 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어 처형된 표토르 팔 첸스키를 통해 인민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대규모 기술 시스템을 도입하여 강력한 소련 테크놀로지를 구축했던 이면을 탐구하고 있다. 시스템보다 사람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팔친스키의 목소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기업가나 정치인, 엔지니어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무척 위험한 기술인 원전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나 각종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과거 공산국가 소련이 하는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그토록 자본주의를 신봉하면서도 공산주의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팔친스키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해 성장하면서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지에서 성공한 산업 컨설턴트로 활동했다고 한다. 혁명 훨씬 이전부터 팔친스키는 사회주의자였다고 한다. 새로운 체제가 자리잡기 시작한 소련에서 새로운 소비에트식 정치 및 경제 체제의 매력적인 측면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가능성을 본 듯하다. 한국이 광복되고 나서 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지역 차이를 강조하고 배려하는 산업을 추구하지 않았다. 무조건 투자하고 정부의 역량을 집중시켰다. 팔친스키는 대규모 개발을 통한 기능적 계획과 지역 계획이 적당하게 조율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지역적 조건에 눈 감은 중앙 집중식 계획은 추후 소련에 큰 문제를 만들게 했다. 즉 한국의 강남 중심의 개발은 지금도 심각한 불공평을 야기하고 있다. 지역에 편중된 개발방식이나 대기업 위주의 지원은 마치 한국을 모두 먹여 살릴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하나 중규모 기업이 많은 국가가 오히려 효율적인 경우가 더 많고 국민들도 더 행복하다. 자본과 모든 자원이 대기업에 몰리면서 심각한 불균형과 불공평을 야기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문제는 그런 것에서 비롯이 된 것이다.
"세계는 전 인류를 위한 것이다." - 팔친스키
자본주의는 자본을 기반으로 최적의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사회주의는 모든 것이 공평하다는 인간적인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팔친스키는 믿었다. 그러나 소련의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산업에 자본주의를 넣되 나머지는 모두 비효율적인 것만 추구했다. 팔친스키는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팔친스키는 재판 없이 사형당한다. 팔친스키와 같이 활동했던 엔지니어들이 사라진 이후 소련의 엔지니어는 지극히 단순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교육을 받게 된다.
지금 한국의 교육은 철학이라던가 인문학은 없다. 문제를 잘 풀어내는 존재로만 키워내고 있다. 그리고 생각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복합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건설된 대규모 수력 발전소 드네프르 댐
오늘날 비효율의 기념비로 자리 잡은 마그니토고르스크
운하를 무척 좋아했던 스탈린에 의해 주도되어 거의 쓸모없는 유산으로 남은 백해 운하
거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강조하여 중앙 집중식 계획을 선호하여 안전보다 결과물을, 인간보다 기술을 중요시하여 치명적인 재난을 일으킨 체르노빌 등 수많은 실패 사례를 보인 소련은 엄청난 원자재와 가능성을 가진 국가였지만 지금은 지구 상에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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