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새벽배송 금지가 과연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켜주는 것일까.
자본주의가 오늘처럼 몸집을 키우기까지는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철저하게 분업된 세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낮 동안 도시의 톱니바퀴를 돌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톱니가 멈추지 않도록 밤을 지켜냈다. 모든 일을 한 사람이 해결해야 했던 선사시대에는 경제 규모라는 말을 꺼낼 이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기계는 인간의 손이 감당할 수 없던 속도로 생산을 쏟아냈고 그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역할을 찾아가며 물질적 진보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밤에 일하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그렇다고 치명적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만약 모든 시민이 아침 9시에 일하고 저녁 6시에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식사와 충분한 수면을 보장받는 사회라면 어떨까. 적절한 임금과 안전한 노동, 예측 가능한 일상. 그런 사회는 현실보다 유리신발만 신으면 왕자를 만날 수 있다는 동화에 가깝다.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건강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히 돌아가지 않는다. 야간 노동에 몰리는 것은 자유의지와 생계의 필요가 섞여 있는 현상이며, “더 벌고 싶다”는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쿠팡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9.7시간이며 산업재해 판정 기준에 따라 야간 노동 가중치를 적용하면 12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새벽에 일하는 사람은 쿠팡뿐만이 아니다.
해가 뜨기 전에 밭으로 나가는 농부,
어두운 항구에서 그물 손질을 시작하는 어부,
밤이 되어야 집중이 되는 프리랜서까지.
도시에 숨을 불어넣는 수많은 밤의 노동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집단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잘 들리지 않는다.
“택배를 하루 받지 못한다고 사람이 죽진 않는다.”
택배노조 관계자의 이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 하루 동안 움직이는 경제적 가치, 소비의 연결, 유통의 흐름은 결코 작지 않다. 야간 노동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면, 우리는 차량 운행도 금지해야 한다. 더 많은 생명이 도로에서 사라지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야간 노동만을 특별히 위험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쿠팡 노동자들조차 심야 배송이 교통 혼잡이 적고 동선이 효율적이라 “일하기 좋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노동자를 위하는 듯 보이지만 그 주장 속에는 집단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또 다른 계산이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인간적인 삶과 적정 소득을 보장하는 일은 결국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온한 유토피아적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종종 '이웃을 위하는 척'하는 모순적인 욕망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본질은 어쩌면 자본주의가 번영해 온 이유, 즉 ‘개인의 사적 욕망’이 만든 열매와 그림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쿠팡이나 컬리가 직배송 시장을 키우기 전 CJ대한통운의 주식을 사서 아직도 마이너스를 보고 있다. 내 이익만 따진다면 새벽배송이 축소되기를 바라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하는 척하면서 결국 자신들의 몫을 키우려는 집단적 주장에 늘 이상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렇게 쓴다. 누군가의 그럴듯한 명분을 벗겨내면 거기에도 어김없이 자기 이익이라는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진실은 이 자본주의를 움직여온 힘이자, 이 사회를 복잡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강자의 목소리이냐 약자의 목소리이냐 혹은 집단의 목소리이냐 소수의 목소리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어차피 각자의 이득때문에 주장하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