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콜리니코프의 죄와 벌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최근에 연기가 조진웅이 은퇴선언을 했다. 그의 성향으로 볼 때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되고 그것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 든 간에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그런 피해가 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이 아닐 때 범죄라는 무게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미성년자일 때의 범죄에 대해 성인과 달리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아직 뇌가 발달하지 않았고 이성이 성인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기회를 주어야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성년일 때에도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망정 담배나 술이라던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그냥 스스로 안 했다. 당시에 그런 일탈이 청소년들에게 쿨해보였을지 몰라도 그냥 좋아 보이지 않았다. 좋아 보이는 것과 정말 좋은 것은 달랐다. 그래서 아예 하지 않고 그런 친구들 곁으로 가보지도 않았다. 세 보이고 싶지도 않고 인싸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냥 내 삶을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조진웅이라는 배우는 아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우선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조진웅이 연기는 괜찮게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조진웅이 나온 영화도 상당히 많이 본 듯하다. 조진웅의 소년범 전력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여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왜 이 시기에 조진웅이 부각이 되는 것일까. 우선 청소년 범죄는 공개가 되지 않는다. 공개가 되지 않은 내용을 언론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그 언론은 대중이 알 권리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덮는다던가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인가가 궁금했다.
범죄의 자세한 내용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는다. 특히 미성년일 때의 과실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한국의 법이다. 어떻게든 미성년일 때의 범죄가 있었다는 것은 알 수가 있지만 세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는데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흘려버렸다. 물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까발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 한국사회는 죄와 벌에 대해서 너무 자기 위주적이면서 감성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필자 역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를 너무나 싫어한다. 그렇지만 그 범죄가 모든 사회활동을 멈추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탈탈 털어서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고 경제적으로 괜찮아지는 사람들 중에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 특히 정치인들은 더 많은 티끌이 있다. 자신의 티끌을 감추고 상대방의 티끌을 찾아내는 일들을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은 먹잇감으로 아주 적당한 사람들이다. 적당하게 이슈가 터졌을 때 물타기를 하기에도 좋다.
조진웅이 미성년일 때 범죄를 저지른 것은 대가를 치렀다고 해도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앞으로 살아가야 되는 모든 일상에서 영향을 미쳐야 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조진웅이 과거의 범죄이력과 상관없이 독립운동가를 지지할 수는 있다. 그것이 한국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미성년일 때의 범죄이력 때문에 희석될 수가 있을까.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돈, 정치, 언론의 탐욕이 더해지는 한국사회를 다시 보게 된다.
죄와 벌은 누구에게나 공평할까. 힘이 있다면 죄가 가벼워지고 힘이 없으면 죄가 무거워지는 한국의 현실에서 조진웅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조진웅을 타격한 것은 사회의 정의가 아니라 폭력일 수 있다. 자신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온갖 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들이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회가 정의롭지 않은데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고 낯간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