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당 박세화가 주자와 송시열을 기리며 세운 제천의 병산영당
주자라는 철학자는 공자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살아갔던 사람이기도 하다. 주자는 인간의 악은 무지와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이 되었다고 보며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고 잘못된 습관을 교정해 나가면 본래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주자는 힘들고 병든 심신을 고쳐서 건강한 인간으로 살게 하려는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제자들의 성향도 달라지게 된다.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라는 곳에 가면 병산영당이라는 사당이 나온다. 병산영당은 의당 박세화가 1907년 덕산면 억수리에 용하영당을 창건하여 회암 주자와 우암 송시열 두 분의 영정을 봉안하고 삭망에 분향하여 온 것이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사곡리라는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글귀가 새겨진 바위들도 나온다. 이 부근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 새겨놓은 것이 아닐까.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용하영당은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는데 문인들이 청풍면 장선리 병산곡에 병산영당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당시 건물 구조가 목조 초가 정면 3칸, 측면 2칸이었으나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 건물이 퇴락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1994년 현재의 장소로 양암 유지혁의 말제자인 매헌 안광영이 이곳에 영동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곳곳에는 운동기구나 돌로 만들어진 조형물등을 볼 수가 있다.
봉산영당은 모두 여덟 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학제 이원우가 쓴 병산영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공자가 아닌 주자를 이곳에 모신 것은 자연과 관련된 것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건물은 단출하지만 병산영당에서는 춘추(음력 3월 15일, 9월 15일)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주자는 자연을 중시했었다. 그것을 삶의 이념으로 설정하면서 살아왔다. 주자는 노력의 단계를 서, 자연스러운 탈각의 상태를 인으로 구분하였다.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1834~1910년) 선생은 월악산 용하동에서 용하영당(用夏影堂, 후칭 병산영당)을 창건하고 충북 제천에서 20여 년 동안 수 없이 많은 문인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박세화 선생은 1905년 춘추대의(春秋大義) 정신으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제자들과 함께 8개월간 한성사령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글 읽은 선비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23일간 절식(絶食) 끝에 순국(殉國)하신 선비정신의 표상이시고 한말의 대유학자이다.
건물의 담장은 자연석과 마주치면서 자연과 조화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서 걸었던 사람의 흔적을 찾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유교는 仁을 최고의 목표로 한다. 주자는 仁에 이르는 길은 오래된 자기 망각, 그 오염을 걷어내고 본래의 빛과 힘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제천에서의 2025년은 이렇게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