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여행길이 조성된 강경 근대사거리
100이라는 숫자는 한국을 비롯하여 다른 국가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100번, 100년 등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간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오래 살았을 때 100년이기 때문일까. 100년은 세대로 보면 3세대가 넘는 시간이다.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레트로풍의 거리풍경이 그려지지 않을까. 가까운 곳에서 100년이라는 시간의 힘을 가진 공간으로 논산의 강경이라는 지역이 있다.
2026년에 강경을 방문한 것은 종영된 드라마 백번의 추억의 배경지를 한 번 걸어보기 위해서였다. '백번의 추억'은 1980년대 100번 버스 안내양 영례(김다미)와 종희의 눈부신 우정과 운명적 남자 재필을 둘러싼 청춘 멜로물로,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레트로 감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내 호평받았다
대한민국 근대 건축물은 갑오개혁 이후부터 대한제국 시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을 의미하는데 강경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일본식 가옥과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거리가 강경에 있다.
예전에는 한자로 된 상점을 흔하게 볼 수가 있었다. 그 이후에는 영어로 된 상점의 이름이 많아졌다. 필자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한자는 필수교육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국가유산청은 역사적·예술적·사회적 또는 학술 가치가 인정되어 특별히 보존할 필요가 있는 건축물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강경이라는 지역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를 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재활성화를 통해 상권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백번의 추억에서도 등장하는 버스가 100번이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 세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버스 안내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타는 버스에서 안전과 운행보조를 했었던 사람이었다.
백번의 추억이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친구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숭고한 희생과 모든 오해를 털어버린 인물들의 화해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기며 해피엔딩을 이끌었다.
80년대는 100년 전의 시기는 아니지만 그때에는 감성이 있었고 서정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장녀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100번 버스 안내양 고영례는 씩씩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조용한 시간 속에서 100년 전은 금강 하류에 자리한 강경(江景)은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내륙 수운 중심의 하항(河港)으로 '포구의 도시'였다. 강경포구에서 북쪽으로 20km 금강 뱃길이면 부여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도 근대 상업, 종교, 교육과 문화유산이 강경읍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그 당시에는 객주와 상인, 나룻배 사공이 어깨를 맞대며 강경포구를 움직였다. 강경이 '포구의 도시'에서 근대 상업도시로 이행하던 과도기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대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100번의 인연 속에서 100번의 추억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일제강점기에 도시 거점에 설치한 근대적 사교·오락·집회·문화 향유를 목적으로 운영된 공간인 강경구락부(江景俱樂部)는 근대 도시의 문화적 허브 역할을 맡았던 곳이기도 했다.
도시의 지속성은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백번의 추억으로 만나본 강경은 전성기가 지나버린 포구를 넘어슨 근대를 의도적으로 담아낸 공간으로 기억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