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힘, 권력
200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작품인 보더타운은 멕시코 국경마을 사우다드 후아레스에서 벌어진 여성노동자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멕시코 여성 노동자들의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은 잘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가 FTA에 자꾸 제동을 걸고 있긴 하지만 전세계는 이미 하나로 묶인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힘과 권력, 자본으로 앞선 나라의 국민들은 대부분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노동력 착취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거대기업이나 한국의 기업들은 국적은 있지만 자본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어느 곳에도 공장을 세울 수 있고 누군가를 착취할 수 있다.
1980년대에 한국인들도 경험했지만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말할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정당한 권리란 없으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면 천부인권이 부여되었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 멕시코는 아직도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무법천지를 경험할 수 있는 국가다. 2014년에는 1968년에 틀라텔롤코 학살 추모에 참여하기 위해 가던 학생들 중 43명이 쓰레기 매립장에서 살해되고 불태워지기도 했다. 멕시코 경찰은 지역의 범죄조직들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중앙정부는 묵인하는 수준을 넘어서 조장까지 한다.
멕시코에서 태어나 학대를 경험하고 미국으로 갔던 로렌은 여기자로 일하다가 우연히 멕시코로 돌아가 디아즈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멕시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살인사건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여성의 살인사건을 가지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나오지만 UN 통계에 따르면 멕시코는 매년 여성 2500명, 매일 여성 7명이 살해당하는 나라인 것을 보면 한국에서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성 살해를 보통 femicide라고 부르는데 멕시코는 심각한 여성폭력이나 여성 혐오가 뿌리 깊어 쉽게 바꾸기 힘들다고 한다.
‘한 사람도 잃을 수 없다(Ni Una Más)’, ‘마라에게 정의를(Justicia Para Mara)’, ‘당신 잘못이 아니다(No Fue Tu Culpa)’...
멕시코의 문제를 미국으로 끌어와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미국 정치인과 미국과 멕시코의 FTA로 인한 이해관계는 그녀가 저널리즘에 입각해서 쓴 글을 그냥 사장시켜 버린다.
한국은 앞과 뒤를 고려하며 제대로 된 비판을 하기 위한 저널리즘을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층과 노년층, 남자와 여자, 있는 자와 없는 자로 양분하여 서로를 공격하게끔 만드는 글을 쓴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비판기사는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먹잇감을 찾는 비난 기사는 사회를 오히려 썩게 만든다. 로렌은 미국 사회와 멕시코가 가지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저널리즘으로 접근했지만 아직 자본과 권력이 강한 사회에서 그냥 하나의 기사도 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부크크 http://www.bookk.co.kr/book/view/23837
Yes24 http://www.yes24.com/24/goods/45879998?scode=029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8367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