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도 하나의 선택
상대를 알고자 하지 않았다. 나아가서는 자신조차 알고자 하지 않았다. 조선의 군주 인조는 그러했다. 그런 인조에게 두 명의 신하가 있었다. 화친론자 최명길과 항전론자 김상헌이다. 역사에서는 이 둘을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조정에 충심을 전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으나 그러했다고 보기 힘들다. 조선의 정치인들 상당수는 정견이 다르던 사람이 가장 적극적인 옹호자로 돌변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관직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순수와 불순수로 나눌 수는 없지만 벼슬에 나아가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동기에는 우열로 구분해볼 수 있다. 보국보민을 위해 관직에 들어선다면 고상하다 볼 수 있지만 권력을 휘두르고 재물을 탐하기 위한 벼슬은 불순하다. 역사에서 배움이 있어야 하는데 조선시대를 통틀어 역사에서 배움이 있었던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척화론과 주화론자의 생각은 임진왜란 때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정유재란 때 반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묘호란이 있을 때도 반복되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이어 병자호란 때 삼전도 굴욕으로 이어졌다.
청나라에 대한 판단 착오로 인해 병자호란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임금을 비롯한 신하들은 외면했고 그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영화는 그로 인해 삶과 죽음의 판단밖에 없는 극한의 시대 배경을 그리고 있다. 47일 동안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백성이 아닌 자신들의 삶을 영속하기 위한 것만 논의했다. 청나라에 패배를 시인하고 부모의 나라 혹은 형제의 나라로 받듬에 있어 기득권이 얼마나 유지되느냐가 가장 큰 관심이었다. 정묘호란 이후 버티기 프레임에 갇혀 강화도 방비를 했지만 그동안 청나라는 가만히 있었겠는가. 명의 장수였던 공유덕과 경중명을 중심으로 수군을 강화한 청나라에게 있어 강화도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었다. 만약 그곳으로 피신했다 하더라도 더 처참한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는 광해군보다 더 시대적인 상황을 몰랐다. 반정의 명분이었던 명나라를 섬기는 것이 백성의 삶을 고단케 하지 않는 것보다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남한산성에 갇혀 늦게 자신을 구하라며 전국에 파발을 날렸지만 47일 동안 청나라의 강군에 맞설만한 군대가 나오지 못했다. 경상감사 심연이 이끄는 병력 8,000여 명, 강원감사 조정호의 1,000여 명, 충청도 근왕 군, 전라도 근왕병, 평안병사 근왕병은 대부분 패배했고 일부 승전을 하기도 했으나 인조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모든 수단이 사라진 상황에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신하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날아온 소식은 강화도에 갔던 봉림대군과 강빈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인조의 판단 착오로 인한 조정의 불씨는 이때 시작이 되었다. 강빈 혹은 민회빈 강씨는 소현세자와 함께 삼전도 굴욕 이후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다. 자신의 과오로 시작된 마음속의 분노는 청나라에서 심양 인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장을 확장했던 강빈과 수많은 수행원들과 산더미 같은 물품을 바리바리 싣고 와 백성들에게 환호를 받은 소현세자에게로 향했다. 실수에게서 배움이 없고 오히려 더 그릇된 생각을 가지게 된 왕의 그릇이 인조였다.
영화에서는 모든 역량을 최명길과 김상헌에게 걸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에서 명분과 실리로 포장되었으나 이들에게는 그것이 죽음보다 더 큰 가치였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 아니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주장한 김상헌과 청의 아가리 속에서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라는 최명길은 각자의 명분을 내세우며 대립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출구는 있다. 그러나 선택 가능성이라는 조건이 있다. 조정에 대한 선택 가능성과 방식에 대한 선택 가능성이다. 인조가 청나라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첫 번째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을 형의 나라로 받들고 왕조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을 배척했을 때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다. 강소국으로 조선의 체제를 바꾸는 방법과 개입의 여부, 참여 여부 등을 스스로 결정하는 선택의 다양성이 있지만 남한산성에는 선택의 다양성이 없었다.
척화를 주장하는 김상헌에게는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 최명길은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믿음과 현실상황을 적절하게 타협을 보았다. 모든 것을 누리는 자리에 있는 것은 모든 것에 책임을 지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인조의 삼전도 굴욕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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