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 만난 사람 양무공신 이삼이야기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서 살아야 하지만 그런 사이에도 신뢰가 깨지는 일들이 있다. 누군가가 잘되는 것은 시기하고 이유 없이 비난하며 누군가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도 공격을 받아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기도 한다. 논산에 가면 명재 윤증의 제자이면서 논산을 기반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삼 장군의 고택이 남아 있다. 이삼 장군의 앞에 붙은 호인 백일은 영조가 이삼을 비방하는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친히 하사한 편액 당호이기도 하다.
오래간만에 논산에 자리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을 방문했다. 한옥에서 머물고 한옥의 관점으로 보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곳이어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작년 기관지 '한유진'은 전통 인문정신과 현대 문화 감성을 결합한 기획력, 독자 친화적 편집, 지속가능한 출판 실천 등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기관지 '한유진'이 단순한 간행물을 넘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인문적 가치와 성찰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충청유교문화대계' 편찬 사업을 통해 지역 유교문화를 집대성하고 있으며, K-유교 국제포럼과 한국예학센터 운영으로 국제적인 연구 역량을 증명해 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유진은 명실상부한 유교문화 전문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겨울이야기를 나누어보기에 좋은 곳이다. 기본이 탄탄한 사람이 더욱더 주목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유교는 그런 사람들의 가치를 더 공고하게 해주는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는 유물 특별전으로 양무공신 이삼에 대한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삼은 사산감역 이사길과 남양전 씨 사이에서 태어나서 논산 주곡리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소론의 대표인 윤증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다가 1701년 병조판서 김구의 천거로 선전관으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관직이 올라가고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는 누군가에게 시기를 사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삼 역시 숙종, 경종, 영조를 거치면서 벼슬이 높아지게 되었는데 1721년 ~ 1722년 신임사화, 1725년 을사환국에 연루되어 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으나 국왕의 두터운 신뢰로 화를 면하게 된다.
이곳에는 이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기록물들이 있다. 1728년 공신에 책록 된 후에도 정적은 이삼을 이인좌 일당으로 오는 등 끌어내리려고 했었다. 1731년 남덕하는 상관인데도 불구하고 이삼을 역모와 관련 있다고 해서 하직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이에 영조는 남덕하를 유배에 처하게 한다. 남덕하가 유배에 풀려난 이후에도 계속 이삼을 비방하는 상소를 열렸다.
이삼은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을 1734년 영조에게 올렸다. 이에 영조는 "경의 충성은 밝은 해를 꿰뚫을 만하다."라고 하며 백일이라는 편액 당호를 친히 하사했다. 그 당호는 논산의 고택의 이름에 쓰이게 된다.
사람을 믿기까지는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줘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쉽게 믿고 쉽게 의심한다. 영조는 '의심스러우면 맡기지 않고, 맡겼으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이삼에게 주요 관직을 제수하였다. 이삼은 국왕을 달에, 자기를 별에 빗대어 충의를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의심을 견뎌야 했고, 자신의 공적보다 더 많은 오해와 맞서야 했다. 그러나 끝내 그를 지켜준 것은 권력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믿음이었다. 영조의 신뢰는 단순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려는 선택에 가까웠다.
빼곡히 쓰인 글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위해 끊임없이 갈고닦으면서 살아간다. 열두 살 소년의 이름은 송이었다. 또래보다 단단한 느낌의 아이는 스승이었던 윤증의 눈에는 남다르게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윤증은 제자들에게 풍경을 읊게 하였고 달빛 고요한 밤 아래 소년 송은 "달은 별을 이끄는 장수 같고, 별은 달을 호위하는 병사 같네."라고 노래하였다. 이에 스승은 당나라 시인 위응물의 시구를 떠올리며 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가 바로 백일헌 이삼이다.
이삼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 자리한 한옥연수원을 돌아보았다. 올해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연수과정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지원해 보는 것도 좋다. 한옥의 마루에 잠시 앉아 겨울 햇빛이 기와 위를 미끄러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권력과 시기, 충성과 의심, 믿음과 배신. 시대는 바뀌었지만 인간의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의 공간은 그래서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유교는 과거의 윤리가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오래된 사유였다. 능력보다 인격, 결과보다 과정, 성공보다 신뢰를 먼저 묻는 태도. 빠른 속도와 즉각적인 평가에 익숙해진 오늘의 사회에서, 그런 질문은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논산의 겨울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선택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과거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