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겨울, 정읍

겨울에 방문해 본 정읍의 동학과 전봉준을 만난 후 따뜻한 쌍화차

추운 겨울 아침에 운동을 하려고 실내공간을 방문했다. 추운 겨울날이지만 요가를 하려고 방문한 사람들과의 인사 그리고 강사와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운동을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몸이 풀린 채로 정읍이라는 도시로 출발을 했다. 필자에게는 겨울의 정읍은 늘 무언가 정적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화려함보다 침묵이 먼저 보이고, 속도보다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있다.

정읍01.JPG

만석보는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었던 곳이다. 조선 말기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에게 과도한 부역과 세금을 부과하며 축조한 인공 보였다. 물은 원래 공동체의 것이었지만, 만석보는 권력이 물을 독점하는 상징이 되었다.

정읍02.JPG

농민들은 물을 쓰기 위해 돈을 내야 했고, 보를 쌓는 노동에 동원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삶의 최소한마저 빼앗겼다. 만석보는 물을 가두는 시설이 아니라, 농민의 삶을 가두는 구조의 상징이었다.

정읍03.JPG

정읍이라는 도시도 그렇다. 이곳을 떠올리면 관광지보다 먼저 한 사람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전봉준. 사람들은 그를 ‘녹두장군’이라 불렀지만, 그가 일으킨 것은 단순한 봉기가 아니라 시대를 향한 질문이었다.

정읍04.JPG

정읍의 땅과 물 위에서 시작된 질문을 통해 동학농민운동은 책에서 배운 사건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시작된 절박한 삶의 외침이었다. 탐관오리, 수탈, 불평등, 그리고 백성들의 무너진 일상. 정봉준이 들었던 깃발은 권력을 향한 반란이 아니라 존엄을 향한 요구였다.

정읍05.JPG

정읍은 그 질문이 처음 울려 퍼진 장소였던 곳이다. 그래서 이 도시의 풍경은 늘 역사와 함께 읽힌다.

정읍06.JPG

겨울의 정읍은 조용하지만 비어 있지 않다. 겨울의 정읍은 화려하지 않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자리한 들판, 옛 읍성의 흔적, 시장 골목의 낮은 지붕들, 그리고 사람들의 느린 걸음. 정읍의 겨울은 관광지의 계절보다는 기억의 계절에 가깝다. 이곳에서 역사는 박물관에만 있지 않다.

정읍07.JPG

동학농민운동 이후, 정읍은 혁명의 도시에서 일상의 도시로 돌아왔다. 혁명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농부는 다시 논으로 돌아갔고, 장터는 다시 열렸으며, 사람들은 다시 밥을 지어먹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으로 남지만, 도시는 결국 사람들의 밥과 잠, 노동과 대화로 유지된다.

정읍08.JPG

정읍이라는 도시는 과거 농민의 분노, 혁명의 기억, 일상의 시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겹쳐진다. 겨울 정봉준의 생가도 한 번 둘러본다.

정읍09.JPG

만석보는 무너졌지만, 그날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전봉준이 있었던 정읍의 겨울을 걷다 보면, 이 도시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역사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읍10.JPG

정읍의 겨울을 만나고 겨울 저녁, 쌍화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해가 기울 무렵, 정읍의 한 찻집을 방문했다. 쌍화차는 이 도시와 닮아 있다. 달지 않고, 천천히 우러나며,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 맛. 대추와 계피, 숙지황과 감초, 여러 재료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맛을 만든다.

정읍11.JPG

겨울의 정읍이 말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쌍화차를 마시며 문득 생각했다. 정봉준이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권력의 얼굴은 바뀌었지만, 삶의 무게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더 무겁다.

정읍12.JPG

쌍화차의 마지막 온기가 손끝에서 천천히 사라질 때, 정읍의 겨울도 그렇게 마음속에 남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도시 정읍은 역사를 여행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을 사유하게 만드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 겨울의 기억은 쌍화차처럼 오래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할미들의 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