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풍경이 글에 녹아들어 가 있는 정지용 문학관을 가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아름답게 생각한다는 한국인의 언어는 한글이다. 한글로 쓰인 시 혹은 소설 등을 보면 우리의 정신이 어디에 담겨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정지용의 고장인 옥천을 걷다 보면 이곳이 왜 시인의 고향이 되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말이 많지 않은 풍경, 과하지 않은 색감, 물과 들판이 만들어내는 느린 리듬. 옥천은 먼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조금씩 모습을 내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풍경 속에서 정지용의 시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옥천은 시인 정지용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의 이름은 한국 현대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지만, 정지용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고 자랐던 옥천을 직접 걷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의 언어는 설명보다 감각에 가까웠고, 감정의 과잉보다는 풍경의 선명함을 택했다. 그것은 곧 이 고장 옥천의 정서와 닮아 있다.
정지용의 시에는 고향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 고향은 향수에 젖은 과거가 아니라, 떠난 뒤에야 또렷해진 감각의 장소다.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에 담긴 풍경 역시 특별해서라기보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향수 속에서 등장하는 실개천, 흙길, 바람, 낮은 지붕들. 옥천의 풍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시는 그 풍경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남아 있다.
정지용의 문학관을 둘러보면서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접해본다. 이곳에서는 서둘러 사진을 찍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멈춰 서서 정지용의 시를 듣게 된다.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생활의 기척, 강이 흘러가는 낮은 소리들. 정지용의 시가 가진 리듬은 이런 소리들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옥천은 화려한 여행지가 아니다. 대신 오래 머물수록 결이 보이는 곳이다. 정지용의 시 역시 한 번 읽고 끝나는 언어가 아니라, 다시 돌아가 읽을수록 다른 의미가 남는다. 그가 사용한 언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확했고, 감정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오래 남게 만든다.
정지용이라는 시인은 옥천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옥천에서 배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의 시는 특정 장소를 넘어,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는 ‘돌아가고 싶은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옥천은 그 시작점이었고, 시는 그 풍경을 세상으로 건네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시인의 고향을 방문해서 걷는 일은 과거를 복원하는 여행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시간에 가깝다. 옥천을 걸으며 정지용의 시를 떠올리다 보면, 왜 어떤 언어는 돌아가야만 이해되는지 알 것 같아진다. 그리고 고향이란,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말을 거는 장소라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된다.
옥천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크게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시는 이미 태어나 있었고,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정지용의 생가와 문학관을 방문해 보면 이곳이 단순한 ‘시인의 고향’이 아니라, 언어가 태어나기 좋은 땅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남는다. 이 고요함 속에서, 그의 시는 아직도 살아남아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