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예보하지 않는 사람, ‘날씨의 여자’
직접 그린 그림이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날씨가 먼저 떠오른다. 겨울이면 자연스럽게 눈이 내리고 날은 춥고 때로는 겨울답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포근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맑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결이 있고, 흐리다고 하기에는 눈빛이 선명하다.
눈은 내렸지만 햇빛이 얼굴 한쪽에만 머무는 것처럼, 그녀의 표정도 언제나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웃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지난 비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고요해 보이지만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미세한 흔들림이 있다.
나는 그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색이 입혀졌지만 여전히 연필의 결이 남아 있는 얼굴. 완벽하게 매끈하지 않아서 오히려 사람 같았다. 사람의 얼굴은 언제나 날씨를 닮는다. 하루 만에 바뀌지 않고, 한 계절을 통과해야 다른 표정이 된다.
날씨의 여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오늘 날씨 어때요?”
누군가에게는 인사였겠지만,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조금 전에 눈이 그쳤어요. 아직 다 녹지는 않았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녀는 늘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기분을 말할 때도, 관계를 설명할 때도, 미래를 이야기할 때도 감정 대신 날씨를 꺼냈다. 맑음이나 흐림 같은 단순한 단어는 쓰지 않았다. 대신 기압이 내려간다, 구름이 낮다, 바람 방향이 바뀌고 있다 같은 말들이 따라왔다.
그녀 곁에 있으면 조급해질 수가 없었다. 날씨는 재촉해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기다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미묘한 온도 차이, 빛의 각도, 표정의 변화 같은 것들 말이다. 그녀는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천천히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어렵다고 해요. 근데 난 그냥 예보가 없는 날씨일 뿐인데.”
그 말이 직접 그린 그림 속 얼굴과 겹쳐 보였다. 색이 입혀졌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표정.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서로 밀어내지 않고 공존하는 얼굴은 꾸며진 감정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표정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감정 속에 날씨를 담을 수가 있지 않을까.
날씨의 여자는 사라질 때도 소리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라, 천천히 기압이 바뀌는 방식이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 뿐이다. 아, 계절이 바뀌었구나 하고 느낄 때가 가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 그림을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같은 표정이지만, 내가 보는 날씨는 매번 다르다. 어떤 날은 햇살이 더 따뜻해 보이고, 어떤 날은 그림자 쪽이 오래 눈에 밟힌다. 아마도 그건 그림이 변한 게 아니라, 나의 날씨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날씨를 가지고 산다. 어떤 사람은 늘 맑고, 어떤 사람은 자주 비가 오며, 어떤 사람은 예보 없이 바뀐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날씨였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안다. 그녀를 그렸다기보다, 나는 한 계절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림 앞에 서 있을 때마다 나는 알게 된다. 날씨의 여자는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라는 것을. 어떤 날에는 분명 웃고 있는데도 쓸쓸해 보이고, 어떤 날에는 같은 표정인데도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그것은 그녀가 변해서가 아니라, 나의 하루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연필의 결 사이에 남아 있는 미세한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색을 덧입혀도 사라지지 않는 선들처럼, 사람의 얼굴에도 지나온 계절은 남는다. 그녀의 얼굴이 날씨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을 숨겨서가 아니라 모두 흘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왔던 자리에는 습기가 남고, 눈이 녹은 뒤에는 차가운 물이 고인다. 그 흔적들이 모여 하나의 표정이 된다.
나는 이제 안다. 그녀를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날씨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예보가 틀려도, 갑자기 바람이 바뀌어도, 날씨는 그 자체로 잘못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그림을 지나치듯 바라보기도 한다. 오래 붙잡지 않고, 서둘러 해석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얼굴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안의 날씨를 확인한다. 오늘의 나는 어떤 표정으로 이 그림을 보고 있는지.
아마도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같은 얼굴로, 같은 미소로. 계절이 몇 번 더 바뀌어도. 그리고 나는 가끔씩 깨닫게 될 것이다. 그녀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나 자신의 날씨를 배워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