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없어지는 킹생산직 현대차 노조와 바뀌어가는 직업과 산업의 미래
2017년 현대차와 현대차노조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고등학교만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노조 덕분에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아가면서 킹생산직을 유지하던 현대차노조는 그때 파업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2017년 현대차는 현대차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은 1조 8,900억원에 달했다. 이때 현대차 임원진은 파업을 하지 않으면서도 미래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로봇을 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10년이 안된 지금 현대차의 주가는 불과 한 달 전까지 20만 원 후반에서 머물다가 40만 원 후반까지 올라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현대자동차는 생산현장에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배치히가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야 일자리를 잃겠지만 그들이 일자리를 잃든 간에 일반국민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어차피 현대차 노조도 사회 문제나 생산현장에서 희생되는 다른 노동자의 삶에 전혀 관심이 없었듯이 그들이 일자리를 잃던 삶이 피폐해지든 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속으로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투쟁을 하고 그 모든 문제를 협력업체와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전가했으니 말이다.
자동차 문짝을 번쩍 들어 올린 팔이, 그대로 180도 반대 방향까지 돌아가는 아틀라스는 자유롭게 회전하는 관절로 사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현대차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190cm의 키에 몸무게는 90kg에 이른다. 이 로봇의 최대 가동시간은 4시간으로 보고 있다. 전기가 떨어지면 알아서 배터리를 바꿔가면서 일하게 된다. 아틀라스는 현대차 노동자처럼 3교대로 교대하면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밥을 먹지 않아도 되며 때가 되면 담배도 피우지 않고 1년에 한 번쯤은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꽹과리를 치지 않는다.
아틀라스의 한 대가격은 약 2억 원 정도로 추정을 하고 있다. 현대차 노동자의 1년 연봉을 1억이라고 가정했을 때 5년 동안 여러 가지 복지비용을 고려하면 14억 정도로 추정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틀라스는 5년 동안 유지비용이 구입비용을 포함해 2억 5천만 원이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CEO라고 해도 아틀라스를 대거 현장에 투입할 듯하다. 한국 현대차 노동자 한 명이 1년에 생산하는 자동차가 44대지만 미국의 노동자 1명이 생산하는 물량은 88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토록 노동의 난이도를 줄여주기를 바라고 조금 더 천천히 일하고 받고 싶은 것이 많은 노동자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경영자나 임원들은 아무도 없다. 특히 주식을 구매하는 투자자들은 아틀라스 투입에 열광을 하면서 현대차의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 주에 50만 원을 넘보고 있다. 아틀라스'는 교체 가능한 배터리를 사용하여, 약 4시간 동안 일정한 속도로 안정적이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로 하고 있다.
전기차는 바닥에 배터리를 깔면 되지만, 인간을 닮은 로봇은 배터리를 넣을 공간이 훨씬 작은데도, 수십 개 관절을 움직일 수 있게 충분한 출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더 효율적인 배터리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현대차의 4족 보행 로봇에도 모두 우리 업체의 NCM 배터리가 들어간다. 즉 핵심을 연결해 주는 순은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심장에는 하이니켈배터리나 전고체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이런 고효율의 배터리를 쓰더라도 4~5시간을 넘어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노동의 협상력을 기술로 재정의한 상징에 가깝다. 임금 협상도, 근무 조건도, 감정도 없는 존재는 자본에게 가장 예측 가능한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열광한 이유 역시 로봇의 성능보다, 파업 리스크가 사라진 생산라인의 안정성에 있었습니다. 주가가 반응한 것은 로봇의 팔이 아니라, 그 팔이 만들어낼 ‘중단 없는 생산’이었다.
휴머노이드는 배터리를 필요로 하고, 배터리는 고효율·고출력을 요구한다. 하이니켈 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 그리고 그 내부를 연결하는 은과 같은 핵심 소재의 수요는 노동 문제와 무관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로봇은 전기를 먹고, 전기는 자원을 요구한다. 노동의 갈등은 기술로 대체되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에너지가 미래 권력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이런 사실이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