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해안도시 보령시의 구도심을 거닐고 변화를 생각하다.
보령이라는 도시는 대천해수욕장과 보령 머드축제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도시자체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가는 여행객들이 많지는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보령이라는 도시는 10여 년 전부터 계속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령의 구도심을 걷는 일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멈춰 선 지점을 통과하는 일에 가깝다. 관광의 중심이 바다로 옮겨간 이후, 이곳은 빠르게 낡기보다는 천천히 바뀌는 방식으로 변화해 왔다.
마침 보령의 구도심을 찾은 날은 보령의 5일장이 열리고 있을 때였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령시를 방문해서 활기찬 모습이 눈에 뜨였다.
한때 상권의 중심이었을 거리에는 여전히 간판이 남아 있지만, 그 아래에서 오가는 사람의 밀도는 예전과 다르다. 보령의 중심에는 여러 전통시장이 블록과 블록을 이어주고 있다. 보령시 역시 과거의 구도심은 생활과 일, 소비와 관계가 자연스럽게 엮이던 장소였다.
보령시는 올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지역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에너지그린도시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보령의 구도심에는 신도시가 갖기 어려운 조건들이 남아 있다. 오래된 골목, 낮은 건물, 걷기 가능한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속도로 설계된 공간 구조가 남아 있다.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인 장항선의 대천역 인근. 충남 보령시 대천동 보령경찰서 옆엔 독특한 모양의 망루가 있다. 이 망루는 1950년 10월 초 당시 경찰서장 김선호가 지역주민의 협조를 받아 성주산 일대의 자연석을 운반해 축조한 치안유지용 망루이다.
망루 높이는 10m. 자연석과 시멘트 콘크리트로 몸체를 만들고 윗부분은 8각 기와지붕을 얹었다. 망루 내부는 4층의 나무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망루 꼭대기에 오르면 대천 일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내부 곳곳에서 밖으로 사격할 수 있도록 총안(銃眼)을 22개 설치했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변화는 대규모 개발이 아니라 이 공간이 다시 쓰일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재해석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도시의 변화는 언제나 거창한 개발보다 작은 사용에서 먼저 드러난다. 비어 있던 점포가 잠시 머무는 작업실이 되고, 오래된 주택이 생활형 숙소나 동네 서점으로 전환될 때, 도시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새로 짓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이 안에 다시 들일 것인가’이다. 구도심은 관광지가 되기 전에 먼저 살아 있는 생활공간이어야 한다. 보령의 구도심에는 아지트, 원도심 어울림센터, 상생협력상가 청년창업지원센터, 보령어묵, 수제맥주, 공유주방, 마을호텔, 남대전상생상가 커뮤니티 쉼터, 남대천 어울림센터등을 조성을 해두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는 근대역사 전시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오래전 보령시의 구도심을 만나볼 수가 있다. 보령 구도심을 걷다 보면, 이곳이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전히 드문드문 불이 켜진 가게가 있고, 오래된 단골을 맞이하는 식당이 있으며, 익숙한 얼굴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도시의 가능성은 이런 관계의 잔여 위에서 만들어진다.
도시 재생이란 결국 속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 빠른 변화는 기존의 삶을 밀어내고, 너무 느린 변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든다. 보령 구도심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랜드마크보다, 걷는 사람의 리듬에 맞는 변화다. 하루를 보내고, 일을 하고, 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구조. 그 안에서 문화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겹쳐질 때 도시는 다시 중심을 회복할 수가 있다.
보령은 질문을 바꿔야 할 시점에 와있다. 관광객을 얼마나 더 부를 것인가가 아니라, 이 도시에 머무는 삶을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구도심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장소며 사소한 변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