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천주교 성지길

당진에서 사라진 공동체의 길을 걷다가 만난 황무실 성지

올해가 시작된 지가 벌써 1달이 훌쩍 넘게 지나가고 있다. 날은 좀 추워졌지만 조금은 사색하면서 걸어볼 수 있는 길을 걷기 위해 당진의 황무실 성지를 방문해 보았다. 황무실성 지는 사라진 공동체 위에서 다시 삶을 묻는 공간이기도 하다. 2026년 2월의 어느 날, 저는 황무실 성지로 이어지는 천주교 성지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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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라는 말이 주는 엄숙함보다는, 변화의 속도 앞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되짚는 시간에 가져볼 수가 있었다. 지금은 당진시의 중심에서도 많이 벗어난 곳이지만 황무실성지는 사람이 살던 곳이지만 공동체를 이루었던 사람이 사라진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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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35년 전인 1785년, 이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시원하게 트인 풍광을 보여주지만, 내포 지역에 천주교가 전해진 직후 이곳에는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오래된 신앙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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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명의 신자가 거주했던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의 시대를 피해 숨어 지내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는 각각 1857년과 1863년에 병으로 선종해 이 땅에 묻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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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박해로 교우촌은 붕괴되었고,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사람이 살던 공간은 비어 갔고, 신앙은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와 겹쳐 보이는 장면이었다. 공동체는 영원할 것 같지만, 시대의 속도 앞에서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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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황무실 성지의 성지길은 크게 만들지 않기로 한 선택을 했었다. 황무실 성지가 교구 성지로 보존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초기 신앙 공동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로, 많은 순교자의 삶과 선택이 겹쳐진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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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위앵 민 루카 신부의 은거지였으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스승이었던 메스트르·랑드르 신부의 사목 근거지이기도 하다. 성지는 대규모 개발 대신, 순교자 현양비를 세우고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존되어 있다. 4미터 높이의 자연석 현양비는 이곳이 ‘관광지’가 아니라 ‘머무는 장소’ 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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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겨울에 성지길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순례길은 과하지 않고, 설명은 충분하지만 강요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곳은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에 가깝다. 사라진 공동체가 남긴 질문은 성지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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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왜 사라졌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라는 외부 요인으로 무너졌지만, 오늘날의 공동체는 더 복잡한 이유로 해체되고 있다. 불안정한 직업, 줄어드는 인구, 개인화된 삶. 신앙이든, 가족이든, 지역이든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지길이 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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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천주교 성지길 탐방은 과거를 추모하는 여행이기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유의 시간을 주었다. 오래전에는 사람이 살던 공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의미가 바뀐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역시 언젠가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황무실 성지는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삶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선택은 남는다고 말이다. 크게 남기지 않아도, 조용히 지켜낸 의미 하나가 시간을 건너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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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실 성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합덕성당도 잠시 들려보았다. 성지길은 ‘신앙의 길’이기 이전에, 변화의 시대를 건너는 인간의 태도를 묻는 길처럼 느껴졌다. 빠른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남길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만이 다음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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