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체온을 닮은 옹기

옹기문화와 사람의 삶을 채워놓은 옹기문화공원과 울주민속박물관의 귀중

집집마다 하나쯤은 있는 김치냉장고는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에 사용했던 옹기의 과학을 본뜬 것이기도 하다. 겨울이 되면 집 안의 온도보다 기억의 온도가 먼저 내려가게 된다. 냉장고가 가정에 보급되면서 마당은 사라졌고, 마당이 사라지면서 옹기를 둘 자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김치냉장고의 등장은 전통적인 발효 방식을 더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오래된 방식은 불편한 것으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옹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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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전통 맛집을 떠올려 보면, 유독 오래된 맛을 지켜온 곳에는 어김없이 옹기가 뒷마당에 있다. 옹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옹기 속에서 숙성되는 독특한 맛은 김치냉장고로 흉내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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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에 자리한 외고산 옹기마을은 그런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1957년, 경북 영덕군 오천리에서 옹기업을 하던 허덕만 선생의 이주를 시작으로 전국의 옹기장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전국 옹기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숫자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마을이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진행형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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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외고산은 조용하기만 하다. 안쪽의 흙을 빚는 손놀림도, 가마의 숨소리도 여름보다 한 박자 느려지게 된다. 대신 남아 있는 것들은 또렷해진다. 울산옹기박물관과 울주민속박물관, 마을안내센터와 전시가마, 전통장은행과 옹기문화공원, 생태연못과 공방들. 마을을 걷다 보면 옹기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생존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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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는 흙·물·불·바람이 만나 만들어진다. 인체에 무해하고, 독이 없으며, 자연에 가장 가까운 그릇이다. 화재가 나면 더 위험해지는 현대의 물질들과 달리, 옹기는 불을 통과해도 본질을 잃지 않는다. 겨울의 가마 앞에서 이 사실은 더욱 선명해진다. 불은 파괴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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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겨울, 외고산을 찾으며 함께 들른 전시 공간에서는 시민들이 간직해 온 귀중한 물품을 모은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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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유물이나 값비싼 소장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오래 지탱해 온 물건들이었다. 오래된 주전자, 손때가 묻은 그릇, 닳아버린 공구들. 그 물건들 앞에서 옹기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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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놓인 시민들의 물품은 말하고 있었다. 기술이 바뀌어도, 도구가 바뀌어도, 사람은 여전히 시간을 담을 그릇을 필요로 한다고. 옹기는 음식을 담았고, 전시 속 물건들은 삶을 담았다. 둘 다 빠르게 소비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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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산 옹기문화공원을 걷다 보면, 마을공원지구와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는 벽화와 조형물에서 사람들의 생활이 그대로 느껴진다. 매년 5월 열리는 외고산 옹기축제는 흙·물·불·바람을 모티브로 옹기를 배우고 체험하는 자리지만, 겨울의 옹기마을은 축제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수기의 소란이 걷힌 뒤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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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민 수가 200세대를 넘기며 번창했던 마을. 이곳에서 옹기를 만들어 전국으로 보내던 사람들은 풍요를 누리기도 했다. 지금은 그 시절과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대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손으로 만든다는 감각, 오래 쓰는 것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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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문화공원의 다섯 개의 테마로 나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흙과 물과 불과 바람, 그리고 사람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겨울에 걷는 그 길은,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옹기는 말이 없었지만 오래 남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울산의 옹기문화와 시민들의 물건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이 계절, 우리는 묻게 된다. 무엇을 더 편리하게 만들 것인가 보다, 무엇을 오래 지켜야 하는지를 옹기는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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