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바다, 올랑고

얕은 바다가 만든 역사의 섬 올랑고를 다시 방문해 보다.

시간이라는 것은 묘한 개념이다. 사람들은 단순하게 자신이 시간을 흘려보낸 것을 가지고 자신의 나이로 경험을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시간을 보내도 무의미하게 보내면서 어떤 경험을 축적하지는 않는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기회의 틈새를 벌려서 미래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한국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곳을 돌아다녔다.

0R5A0779_новый размер.JPG

이번 세부여행에서 가장 유용한 수단 중에 하나는 Chat GPT와 그랩이었다. 챗GPT는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을 해주었다. 뭐라 할까 살아있는 존재와 경험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할까. 그리고 그랩은 동남아를 여행하는 데 있어서 이동수단으로 활용하기에 너무나 편리하다. 해외여행은 한국사람들이 최대한 적은 곳을 가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경험치가 엄청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0R5A0786_новый размер.JPG

세부에서 배를 타고 20여 분을 나가면 올랑고섬이 나온다. 지도에서 보면 작은 점에 불과한 섬이지만, 바다 위에 서 보면 이곳은 의외로 넓은 곳이다. 수평선이 낮고, 물은 얕고, 햇빛은 사정없이 내리 꽂히는 이 섬은 날 좋은 날 가면 살 태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바다는 깊지 않았기에 오늘날 필리핀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역사 인물 라푸라푸를 탄생시켰다.

0R5A0790_новый размер.JPG

올랑고섬은 푸숙시티에서 세부시티 쪽으로 이동하면 세부뉴타운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 안쪽에 가면 막탄섬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선착장인 망가실 포트(Angasil Port)가 있다. 참고로 세부로 여행 오는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세부뉴타운에서 머문다. 그리고 물가가 막탄섬 안쪽보다는 비싸다.

0R5A0792_новый размер.JPG

여기에서 막탄섬까지는 20~30분 정도가 소요가 되는데 도착지는 올랑고섬 메인 선착장인 산타로사 포트(Santa Rosa Port)에 도착한다. 올랑고섬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이동수단을 확보하는데 는 어렵지 않다. 오는 것이 애매하기 때문에 왕복요금과 잠시 딜레이타임을 고려하면 350페소 정도가 든다.

0R5A0798_новый размер.JPG

올랑고섬의 가장 안쪽으로 가면 가장 깊은 곳도 성인 무릎을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하다. 어떤 구간은 50cm 남짓에 불과하다. 파도는 거의 일지 않고, 물결은 잔잔하다. 멀리서 보면 평평한 유리판처럼 보인다.

0R5A0803_новый размер.JPG

올랑고섬에는 한국의 관점에서 해수욕장이라고 볼 수 있는 곳들도 두어 곳정도 있다. 이곳에서의 숙박은 민박 같은 곳을 이용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불편할 수가 있다.

0R5A0821_новый размер.JPG

올랑고섬의 바다가 16세기 한 제국의 진로를 바꾸었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이 해역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대서양을 건너 태평양을 지나왔고, 세계의 가장자리를 확인한 인물이었다. 항해 기술과 무기, 철제 갑옷과 대포는 그 시대 유럽이 가진 힘의 상징이었다. 그의 이름은 세계사에서 흔하게 보던 마젤란이다.

0R5A0826_новый размер.JPG

평화롭고 모든 것의 변화가 없을 것 같은 이곳은 10년 전에 왔을 때와는 다른 풍경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큰 태풍이 이곳을 통과하면서 지형의 상당수가 바뀌었다. 그래서 과거의 풍경은 사라져 버렸다.

0R5A0830_новый размер.JPG

마젤란이 끌고 온 얕은 리프 플랫은 대형 선박이 접근하기 어려웠고, 대포는 사정거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병사들은 물에 내려 해안을 걸어야 했다. 무거운 갑옷은 열대의 태양 아래에서 족쇄가 되었다. 그가 상대해야 했던 이는 라푸라푸였다. 교과서에서는 그의 이름을 거의 다루지 않지만, 이 지역에서는 지금도 기억되는 인물이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막탄섬은 오늘날 국제공항이 자리한 관문이지만, 당시에는 토착 세력이 버티고 있던 땅이었다.

0R5A0832_новый размер.JPG

올랑고섬은 한국에서 철새가 오가는 곳을 잘 보호하듯이 전 세계에서 보호가 필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입장요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100페소를 받고 있었다.

0R5A0846_новый размер.JPG

지금의 올랑고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해안은 길게 이어지고, 바다는 투명하다. 아이들은 맨발로 물가를 걷고, 어부의 작은 배가 천천히 미끄러진다. 음식점도 많지 않고, 그럴듯한 리조트도 드물다.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부여해 준다.

0R5A0853_новый размер.JPG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올랑고섬을 천천히 걸어서 안쪽까지 가본다. 아래에는 얕은 바다와 어디선가에서 본듯한 물고기들이 천천히 그 사이를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갯벌·해안 습지에서 자라는 여러 수종의 ‘맹그로브 군락’이 조성이 되어 있다.

0R5A0859_новый размер.JPG

드디어 전에 가봤던 전망대가 나온다. 원래는 이곳이 모두 바다였다. 그리고 돌다리 같은 것이 저 끝까지 연결이 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곳은 육지가 되어버렸다. 맹그로브는 바닷물 속 염분을 견디며 뿌리가 물 위로 튀어나오는 ‘호흡근’ 구조를 가지고 있다. 파도를 막아 섬을 보호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며 물고기·게·조개·새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0R5A0865_новый размер.JPG

돌을 이어 만든 좁은 길 끝에는 작은 정자가 서 있다. 초록색 지붕 아래에 앉으면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수백 년 전 이 해안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같은 색을 보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 이곳은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공간이었다. 세부에는 마젤란을 기리는 기념물도 있고, 동시에 라푸라푸를 기리는 동상도 서 있다. 한 사람에게는 개척자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침략자다. 역사는 단일한 얼굴을 하지 않는다.

0R5A0878_новый размер.JPG

햇빛이 강해질수록 물은 더 투명해지고, 바람이 멎으면 수면은 거울처럼 고요해진다. 그 위에서 제국도, 신념도, 무기도 모두 같은 무게로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이곳이 알려주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한 가지 사실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여행자는 그 얕은 바다 위를 천천히 걸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선물처럼 선사해주고 있었다.

0R5A0879_новый размер.JPG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는 잠시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준다. 올랑고섬의 바다는 무엇을 이루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무엇을 남기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같은 자리에 머문 채 사람만 오가게 할 뿐이다. 우리는 흔히 많은 일을 해야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야말로 가장 깊이 남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올랑고섬이 남겨준 것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였다. 당신의 시간은 삶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고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파타야의 화려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