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복원-공존의 따오기

사라졌다가 돌아온 존재 ― “복원된 자연은 같은 자연인가?”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시 불러낸 것이다”


창녕 우포에서 복원된 따오기는 어느 날 다시 나타난 새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다시 불러낸 존재라고 할 수가 있다. 한때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생명이 지금은 보호구역을 벗어난 하늘을 다시 날고 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오랜 개입과 관리가 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따오기는 과거에 살던 그 새와 같은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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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따오기는 원래 인간 가까이에 살던 새였다. 산업화가 자연을 없앤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 변화가 서식지를 사라지게 했다. 따오기는 깊은 산속의 희귀한 새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이 만든 풍경 속에서 살아가던 생명에 가까웠다. 물이 고인 논, 천천히 흐르는 습지, 사람이 농사를 짓고 떠난 자리에서 먹이를 찾던 새였다. 따오기는 자연의 상징이라기보다 인간의 생활과 맞물려 존재하던 생태였다. 이후 우리가 그 생활 방식을 버리면서 따오기도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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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에서 사라진 존재로 따오기가 사라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자연의 사건이 아니었다. 농업 방식이 바뀌고, 습지가 정리되고, 생산성이 우선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그들이 설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멸종은 자연의 비극이라기보다 인간의 선택이 만든 조용한 결과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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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 우리는 자연을 되돌린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생태’를 만든 것으로 유전자 관리, 방사 프로그램, 서식지 설계, 인간이 유지해야 존재 가능한 생명이었다. 지금의 따오기는 스스로 살아남은 생명이 아니다. 번식이 관리되고, 이동이 추적되고, 서식 환경이 유지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설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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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은 야생인가, 공존인가 이제 자연은 더 이상 인간과 분리된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생태가 늘어나고 있다. 따오기는 그 사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우리는 자연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든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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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이라는 행위는 결국 인간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멸종을 막으려는 노력은 결국 자연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라지게 만든 생명을 다시 불러내는 과정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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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따오기는 생태가 아니라 ‘기억의 방식’이다. 따오기는 단순한 보호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자연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그래서 따오기를 바라보는 일은 새를 보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계를 다시 만들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질문은 2026년 현재에도 지속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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