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황화산성에 켜진 불

백제의 시간 위에서 밝힌 불빛, 논산 황화산성 봉화제화

사비시대를 열며 백제가 도읍을 부여로 옮겼을 때, 부여에서 논산까지는 물길이 이어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여의 정림사지와 부소산성 일대가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다면, 논산은 그 전초기지이자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옛 물길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논산의 황화산 일대에는 당시의 기억이 여러 이야기와 유적으로 남아 있어서 살펴볼 수가 있다.

황화01.JPG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이 이곳 높은 바위에서 잔치를 베풀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기록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이 일대에서 백제 유물과 기와 조각이 다수 발견된 점을 보면 그 이야기가 완전히 허황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황화04.JPG

황화산성, 평야를 내려다보던 백제의 방어 거점으로 논산의 황산성과 황화산성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황화산성은 국내에 남아 있는 토성 가운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벽의 기초에는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다져 쌓아 올린 판축 방식의 포곡식 토성이다.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둘러 방어력을 높인 구조로, 당시의 축성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황화06.JPG

성 안에서는 건물터 다섯 곳이 확인되었고, 연꽃무늬 수막새 기와를 비롯한 백제 유물도 출토되었다. 이는 이곳이 단순한 산성이 아니라 사비와 은진 일대를 지키던 전략적 거점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황화08.JPG

지금은 주변에 건물이 들어섰지만, 과거에는 황화산성에 서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였을 것이다. 산성 안쪽 중심에는 작은 사찰인 보명사가 자리하고 있다. 어디로 걸어도 자연스럽게 보명사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다. 낙엽이 떨어진 길 위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계절은 다시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황화09.JPG

시간 위에 겹쳐진 역사, 그리고 봉수의 기억이 있는 황화산성은 백제 이후에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통신의 요충지인 봉수대로 활용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현장이 되기도 했었다. 한 장소가 시대마다 다른 역할을 수행해 온 셈이다.

황화10.JPG

이처럼 겹겹의 시간을 품은 황화산성에서 오늘날 다시 불이 밝혀지고 있다. 황화산성봉화제 추진위원회는 논산시민의 안녕과 지역 발전을 기원하는 ‘제24회 황화산성 봉화제’를 개최하며, 시민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해의 기운을 맞이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작년 행사는 충청남도의 지원으로 더욱 풍성한 규모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황화12.JPG

산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길에 보명사 주지 스님은 이곳이 의자왕이 유연을 베풀었던 자리라 전해지며, 당시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사적 고증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곳이 단순한 방어시설이 아니라 왕실과도 연결된 공간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황화산성은 나지막한 야산 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백제의 방어 전략, 조선의 통신 체계, 동학의 격전, 그리고 오늘날 시민의 축제가 함께 쌓여 있다. 마치 흙을 층층이 다져 올린 토성처럼 시간 또한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황화13.JPG

고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얇은 판을 쌓아 올려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황화산성 역시 그러한 축적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산성이다. 인간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역사가 층층이 쌓여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황화15.JPG

지금 황화산성 위에 서면 논산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과거와 현재의 풍경이 겹쳐지는 자리에서,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하는 장소로 다가온다. 백제의 전초기지였던 이곳에서, 이제는 시민들이 모여 새로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불을 밝히듯이 황화산성의 불빛은 과거를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불빛이 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고려의 마지막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