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물빛을 걷는 시간

3월에 방문해 본 영동 송호금강물빛다리와 봉황대

같은 시간이라도 보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차이도 다르다. 온전하게 시간을 가지면서 세상을 만나다 보면 어떤 때는 마음속의 평온이 그대로 느껴질 때가 있다. 영동을 흐르는 금강이 햇살을 받아서 보석처럼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윤슬 속에 걷기 좋은 길을 찾아가 본다. 충북 영동의 금강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넓어지는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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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한 번 크게 숨을 쉬는 것처럼 넓어지고, 그 위로 길게 놓인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송호금강물빛다리다. 이 다리는 단순히 강을 건너기 위한 시설이라기보다 금강을 천천히 바라보게 만드는 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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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 서면 금강의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빠르게 흐르는 강이 아니라, 산 사이를 돌며 시간을 쌓아온 강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걷는 사람들의 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송호관광지 주변에는 오래된 송림이 이어져 있다. 수십 년, 어쩌면 백 년 가까이 시간을 견뎌온 소나무들이 강가에 서 있다. 강과 숲 사이를 걷다 보면 여행을 왔다기보다 어딘가 오래된 풍경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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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머물렀다는 자리라는 봉황대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 비단물결 같은 금강변에도 그런 곳이 하나 있는데 영동의 봉황대다. 송호금강물빛다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봉황대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전망 지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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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가 조금 신화적이다. 봉황이 내려앉았다는 뜻의 장소다. 실제로 봉황이 내려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봉황대에 올라서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된다. 금강이 크게 휘어 흐르며 만들어내는 곡선과 그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의 능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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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가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의 풍경이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봉황대는 2012년에 새로 세운 것이고 1834년에 봉황대가 있던 산록에는 조선시대의 문인이었던 백우 이시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한천정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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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이 풍경을 보고 이름을 붙였던 방식은 언제나 흥미롭다. 지금처럼 정확한 지리적 설명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풍경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봉황대라는 이름 역시 그런 상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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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느린 여행으로 요즘 영동은 조금씩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월류봉, 반야사, 송호관광지 같은 자연 명소가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꾸준히 늘고 있고, 영동군은 연간 관광객 100만 명 돌파를 목표로 관광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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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이 특별한 이유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쉬어갈 수 있는 풍경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지산 자락의 계곡과 금강 둘레길, 그리고 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조용히 걷기 좋은 여행지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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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영동까지 운행되는 관광열차인 국악와인트레인도 이 지역의 독특한 관광 콘텐츠 중 하나다. 기차 안에서 국악 공연과 와인을 즐기며 영동으로 이동하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알고 나서 금강을 다시 바라보면, 단순한 강이 아니라 시간과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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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금강물빛다리와 봉황대는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돌아볼 수 있는 여행지다. 이곳에는 금강이 만들어낸 느린 풍경이 있다. 강물은 급하게 흐르지 않고 산과 숲 사이를 돌아가며 시간을 쌓아간다. 그 위를 걷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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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어디에 도착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동의 금강을 따라 걷는 길에서 필자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강은 계속 흐르고 있지만 그 위에서 바라보는 시간만큼은 잠시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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