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흥산 사랑나무의 매력은 거대한 숲이 아니라 ‘한 그루’
운명을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끌리고 만나면서 교차되면서 사람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장소들이 있다. 웅장한 건축물이 있는 곳도 아니고, 화려한 관광지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곳일 뿐인데 그 풍경이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오래간만에 방문해 본 충남 부여 성흥산 정상에 서 있는 사랑나무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 나무의 이름은 특별하지 않다. 처음부터 정해진 이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이 풍경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사랑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도 적지가 않다. 아마도 이곳에 서 있는 나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드라마가 사랑한 풍경 속에 이 나무는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부터다. 호텔 델루나,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환혼
같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성흥산 사랑나무는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 보면 드라마 때문이 아니라 풍경 자체가 이미 완성된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넓은 들판 위로 하늘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누군가 연출한 장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이곳까지의 계단은 생각보다 가파른 편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만드는 여백 속의 성흥산 사랑나무의 가장 큰 매력은 무언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나무 한 그루, 하늘 그리고 들판 그것이 전부다.
단순한 풍경이 오히려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남긴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이곳에 서 있으면 나무는 검은 실루엣이 되고 하늘은 붉게 물든다. 마치 오래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다가도 잠시 멈춰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나무가 아니라 시간의 풍경 속 이곳의 주인공은 나무가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 빛이 가장 부드러워지는 순간, 그리고 풍경이 가장 깊어지는 시간 속에서 나무는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각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고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생각한다. 그래서 성흥산 사랑나무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잠시 시간을 바라보는 장소가 된다.
부여의 하늘 아래에서 백제의 옛 수도였던 부여는 오랜 시간이 쌓여 있는 도시다. 부소산성, 궁남지, 백마강 같은 장소들이 그 시간을 말없이 보여준다. 성흥산 정상에 서 있는 사랑나무 역시 어쩌면 그 긴 시간 속에 서 있었을 것이다.
성흥산에는 임천 유태사 묘가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 충절공 유금필을 모시는 공간이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사랑나무처럼 뿌리를 깊숙이 내린 것처럼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연결해 보면 좋을 듯하다. 풍경 속에 빛이 될만한 작은 기억을 하나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