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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stan Nov 27. 2020

01. 사냥이 무서운 성난 호랑이 3

팀장에 관하여

0. 

No Rules Rules.

규칙 없어 보이는 그의 일련의 행태는 다음과 같이 굉장히 복잡성 높아 자칫 규칙 없어보이는 규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추정해본다. 불법은 합법보다 더 성실하다고 했던가? 이렇게 복잡한 사고과정을 거쳐서 대처할 바에야 그냥 해야 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인정하고 모르는 건 공부하면 될 것 같지만, 그 복잡성만큼이나 이미 축척된 그의 경험치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이 쌓여있었다.


1.

실력이 없다.

앞서 했던 말의 반복이다. 브랜딩을 잘하고 싶으면 브랜드 캠페인을 잘 기획해서 진행하면 된다. 성과가 좋으면 반복하고 성과가 개선하면 된다. (사실 실패했다고 측정할 방법도 없고, Critical 한 문제가 아니면 보통 문제 삼지도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나는 DATA로 캠페인을 잘 입증할 자신이 없다.' 혹은 '그 업무의 성과라는 것이 고객 행동과 관련된 지표가 아니고 임원들이 성과라고 인정해주는 가에 달린 거다'라고 생각할 경우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간단히 실력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유형은 정확히 자기가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혹은 그런 게 실력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사실 이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의 모든 회의와 의사 결정이 어이없이 흘러간다. 수십억을 들여서 수십 명이 진행하는 행사이지만 기획 의도와 주요 이벤트를 상급자가 강조한 키워드나 성향을 녹여내기 위한 것으로 치장하게 되고, 결국 사내 결과보고에서는 분명히 성공한 이벤트이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행사로 끝나게 된다.


2.

실력 없음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

직책 간부가 되면 (팀장, 본부장, 대표 등) 맡은 조직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막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항상 내 위에는 나 보다 높은 사람이 있고, 그들에게 팀이 개판이라는 소리가 올라가는 것이야말로 다음 인사평가 때 반영되는 진정한 Risk다. 더욱이 본인의 실력 없음을 본인이 잘 아는 상황에서는 더욱 철저히 팀을 관리해야 한다. 보통은 실력으로 입증하거나 (이는 앞서 자신 없다고 했으니 포기) 아니면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인품으로 감화 감동시키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호랑이 팀장은 여기서 굉장히 창의적인 접근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는데 도 바로, 팀 구성원 모두를 실력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팀원들의 담당업무를 계속 바꾸면서(조직개편) 팀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무질서와 혼돈을 일으키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점에서 스마우그가 생각나기도 한다. (얼래? 용이네?)

그는 '마케터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팀의 체질개선 없이는 우리가 살아남을 수 없다' 등 매번 다양한 이유를 대며 R&R을 뒤흔들고 각 담당자의 업무 전문성 제거하는 전략을 생각해냈다. 예를 들어, 정말 어렵게 선별해서 뽑은 SNS 담당자를 경력자 입사 교육이 끝나자마자 지점 이벤트 담당자로 쓰고, 10년 넘게 기자들을 상대해오던 PR 담당자에게 갑자기 브랜드 마케팅을 맡아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이건 윗사람에게 보고하기 참 좋은 조치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지적하기 전에 뭔가 잘해보려고 팀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먼저 제안하는 것이니 딱히 마다할 이유도 없고 뭔가 열심히 하는 구나라는 인상을 받게된다. 거기에다가 팀원들도 갑자기 새로운 일을 해야하니 정신없는 그 기간동안에는 팀장의 실력없음에 대해서 잊게 되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말 마케팅을 이렇게 치밀하게 했으면 잘했을 사람이다.


3.

실력이 없으니 요구하지 않는다.

조직개편이니, 마케팅팀 업무 10 계명이니, 컨텐전시 플랜이니... 다양한 이름의 Manifesto로 팀과 회사를 뒤흔들어 놓아도 결국 실력 없음은 들통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일을 안 하기 때문이다. 남들 다 하고, 의미없어 보이지만 마케팅이라는 것은 SNS도 해야 되고 이벤트도 해야 되고 캠페인도 해야 티가 난다. 하지만 잘하지 못해도 해놓게 있어야 말이라도 하는데 뭔가 조직만 뒤흔들고 정작 마케팅 성과가 없으니 뒤돌아 보면 아무런 성과가 없어서 뭔가 어필하려고 해도 할게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참고로 잘 된 이벤트, 캠페인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성과가 드러나고 누구나 알게 된다) 보통 이러한 결과는 연말 인사평가 시즌에 발생하는데 이때 다시 한번 기막힌 처세술이 등장하게 된다.


이건 창의적인 접근을 넘어 약간 패러다임에 전환이 필요한데, 나는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라고 어필하는 것이다. 

업무 성과는 안 좋지만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숙할 테니 혼내지 말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다. (으잉?)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른 팀에서는 채용을 더 하게 해달라고 난리인데, TO를 더 주겠다고 해도 안 받는 것이다. 브랜드 강화를 위해 캠페인 예산을 더 쓰라고 해도 예산을 줄이는 것이다. 매년가던 해외 출장도 지금 현업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안 가고 다른 팀원도 못가게 막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예산도 적고 인원도 적어서 팀원들은 매일 야근하고 죽어갈 수 밖에 없는데, 팀장은 팀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 그래서 나중 가서는 여러 힘든 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 했으나 성과가 안 좋았다며 읍소하는 것이다.


그러면 윗사람 입장에서는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해보려고 주겠다고 하는 것도 안 받고 나름 노력했네..라고 생각하며 B를 받아야 할 성과이지만 기특해서 A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이전 진작에서는 심지어 그게 먹혔던 것 같은데, 적어도 이 회사에서 호랑이 팀장은 B를 맡았고 팀원들은 A를 받았다. 아무생각 없어 보이는 임원들도 그냥 임원이 된거는 아니구나 싶었다.


4.

실력 없음을 직시할 용기가 없다.

사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뛰어남이나 부족함을 직시하는 것, 나의 행복과 즐거움, 고통과 두려움의 근원을 직시할 수 있는 것.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적절한 치료가 가능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호랑이 팀장도 20년에 가까운 업무 경력 동안 분명 성공적이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오기 전에 업계에서 유명했던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의 마케팅이라는 영역은 항상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변심하기에 변화를 즐기지 못하고, 학습하지 않는 그 한순간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 트렌드에 역행하거나 트렌드를 만들려면 거장이 되거나 늘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를 키우고 위임하며 관리 역량을 키워가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호랑이 팀장이 왜 본인이 주관하는 미팅은 항상 늦게 들어왔다가 일찍 나가고,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자리는 혼자 들어가는 법 없이 꼭 실무자를 데리고 들어가서 보고를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어느 회식자리에선가 '내가 잘 모르잖냐'라고 덤덤히 고백할 때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밑에서 올라는 결재 문서는 딱히 읽지 않고 결재했고 그러다가 본인이 꼭 보고해야 하는 직책 간부 회의에 들어가기 전날에는 모든 팀원들이 남아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속성 과외를 하느라 야근을 해야 했다. 신문 보지 않고 독서하지 않으며 최소한 SNS라도 하며 남들 하는 거 구경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콘퍼런스나 교육에 참가하는 법이 없었으며 대표가 보라고 가끔 뿌리는 DBR(동아 비즈니스 리뷰)도 팀원에게 요약본 만들어오라고 시키지만 그 마저도 읽지 않았다. 


본인의 실력 없음에 대한 직시가 있어야 개선을 위한 학습과 위임이라는 적정한 처방이 가능한데, 진단이 제대로 안되니 주말 골프라는 잘 못된 처방전만 항상 발급되었다. 


5. 

결국 호랑이 팀장이 이끌던 콘텐츠 마케팅팀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원래 팀원 전체에게 B를 주려고 했으나 뱀 대리가 자신은 A를 받아야 한다고 인사팀에 진정을 넣었고, 규정상 두 명은 A를 줘야 한다고 해서 연말에 바빠 보이는 과장 둘 에게 A를 주었다. (그리고 그 과장 둘은 이직했다) 업무 자체가 복잡해서 호랑이 팀장이 손쓸 틈 없었던 제휴 파트 4명은 연말에 성과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다른 팀으로 흡수 통합되었고 그 사이 뱀 대리는 결혼하고 이혼하고 퇴사했다. 


이제는 정말 최소화된 인원으로 본인의 생존을 위한 컨텐전시 플랜과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며 버티던 호랑이 팀장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현장직으로 발령이 나며 모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호랑이 팀장은 자기가 봐도 회사를 나가라는 발령인 것 같아서 본부장을 찾아갔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며 씁쓸한 마지막 대사를 남기며 사라졌다.


"여러분 현장을 잘 알아야 합니다. 결국 현장입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본부장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을 너무 모르니 현장 경험을 좀 쌓을 필요가 있다며 지점 발령을 냈다고 했다. 콘텐츠 마케팅팀장이 왜 현장을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렇게 지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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