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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stan Dec 17. 2020

02. 사람인척 하는 원숭이 1

남이 한 일도 자기가 한 일이라는 차장에 관하여

원숭이 유형 특징

장점: 아무리 작은 일도 큰 일로 포장하여 성과처럼 보이게 만듦. 일을 못하지는 않음, 독서를 열심히 함 / 단점: 남이 한 일을 자기가 했다고 생각함.  말과 글이 장황함. 독서를 업무 시간에 함. 촌스러움과 비호감이 공존함.


0.

이런 유형이 있다. 학력도 괜찮고 말도 곧 잘하고 커리어도 쓸만해서 맡겨놓으면 일을 하기는 하는데 타고난 인성이 별로인 사람. 처음에는 큰 무리 없이 조직에 어울리는 듯 하지만 그 별로인 인성이 회사 내 여러 관계 속에서 쌓이고 쌓여 결국 뭘 해도 밉상이 되는 사람. 그래서 결국에는 그가 보내는 메일 하나, 사내 메신저 메시지 하나, 그리고 건조하게 작성된 전자결재 문구만 봐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 결국 동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죄책감 느끼게 만들지만 본인만 행복한 사람. 결국 사람의 탈을 쓴 원숭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회화 지수와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는 그런 사람. 그가 바로 원숭이 차장이다.


1.

앞서 했던 방식처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원숭이 차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첫인상이다.


 그녀는 우리 팀에 오기 전에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한번 미팅한 적이 있었다. 오전 10시 미팅이었는데 그쪽 회사로 내가 직접 찾아가서 로비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다되어 상대편 팀장은 먼저 와있는데 한 명이 조금 늦게 왔다. 누가 봐도 지금 일어나서 뛰어온 모양새였는데 그 모습이 흡사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임수정과 밥 말리를 섞어놓은 듯했다. 뭔가 레트로한 룩이 아니라 촌스러웠다는 말이다.

뭔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보풀 가득한 니트 소재로 덮여있었던 것 같다. 


차장쯤이나 되는 사람이 외부 미팅을 늦는 것도 좀 이해가 안 됐지만, 인간적으로 9시 출근인데 9시 30분 미팅도 아니고 10시 미팅을 저렇게 힘겹게 오는 모습이 의아했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늦게 온 미팅에서 주눅 들지 않고 더 당당하게 이런저런 말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미 보낸 미팅 자료에 다 있는 내용을 신경질적으로 질문이랍시고 하길래 '미팅 자료는 보고 오셨어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본인이 지각해놓고 굉장히 짜증나서 남에게 시경질을 부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 

그리고 1년 뒤쯤 우리 '동물의 왕국' 팀 (콘텐츠 마케팅팀)으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쪽 열사가 망하기 직전이라 그래도 돈을 벌고 있었던 우리 회사에서 받아야 했다. 참 사람보는 눈 없기로 유명한 우리 본부장도 새로 오는 원숭이 차장이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주의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원숭이 출근 첫날, 간단히 티타임을 가져보니 그때 나와 미팅을 했던 사실은 기억하지만 그때 자신이 지각했던 일과 준비 안된 모습 등은 내가 기억 못 하리라 생각하는 눈치였다.(아니면 한번 만난 첫인상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내가 이상할 수도 있겠다) '나 까탈스러운 사람이야' 모드로 갑지기 말투와 모습을 재정비 하더니 다음가 같은 대사를 날렸다.


" 저는 일할 때 스케줄링에 예민한 편이에요. 제가 엑셀 양식드릴 테니 맞춰 정리해서 회신 부탁드려요"


그래도 차장이라 내가 속한 브랜드 파트의 장으로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파트라고 해봤자 본인 포함 3명이다.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스케줄링을 위한 엑셀 파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그래서 그 양식이란 것을 받았는데 딱 열어보는 순간 뭔가 어울리지 않는 페르소나를 구동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대충 구글에서 긁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진짜 그때 메일로 보냈던 거랑 너무 비슷하다.


칸칸이 나눠진 표에 진행 정도에 따라 알록달록 색칠하고 프로젝트 설명 칸은 작아서 조금만 길게 쓰면 양식 다 밀리고... 그냥 구글 캘린더나 아웃룩 일정을 서로 공유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귀찮게 엑셀로 만들어서 보낸 것이다. 황당한건 그렇게 스케줄링에 예민하시다는 본인이 평균 주 3일 지각하고 주 1회 정도는 출근시간에 맞춰 외부 미팅을 잡고 늦게 들어오는 등 기본적인 근 퇴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다.


' 아 나는 추우면 더 못 일어나는데 큰일이네'


이따위 멘트를 날리던 겨울 즈음돼서 스케쥴링 아무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원숭이 차장이 계열사에 있을 때 만난 그 미팅이 겨울 즈음이었던 것 같다.


3.

뭐 이런 미숙함이야 사실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저런 사소한 행위가 촉매제가 되어 주변 사람 모두에게 욕먹게 되는 건 근본적으로 인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문제가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자꾸 자기가 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아니, 본인이 해야 될 일을 아랫사람한테 시키고, 그걸 자기가 그대로 팀장에게 전달하는 것이 차장으로서 마땅한 업무 방식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심지어 결국 방출되어 가게된 다른 팀에서 나름 아낀다는 후배한테 한다는 조언이 '남이 한 일도 다 네 걸로 먹어버려라. 그게 회사생활이다'라고 한 걸로 봐선 이건 자기 객관화의 문제가 아닌 본인의 철학, 존재의 이유, 확고한 신념 뭐 이런 것인 듯했다. 


4.

인트로만 간단히 쓰고 심리탐구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다. 


왜 원숭이 차장은 남이 한 일을 자기가 한 일로 포장하여 보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는 왜 계속 지각을 하는가? 왜 팀장만 없으면 업무시간에 책을 읽는가? (문학책)

등등 그 심리의 근원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다루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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