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마리네이드
넷째가 많이 아파요, 아무래도 얼마 못 가지 싶어요.
라는 나의 말에 이미 남자친구는 말이 끝나기도 전부터 눈물바람이었다.
나보다 열 다섯이 어린,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 내 남친.
벌써 사귄지 일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내게 많이 혼나고 여전히 많이 어리고 여린 나의 남자친구.
그가 일생에 맞이하는 첫번째 서러운 이별이려나.
어쩌면 나보다 더 서럽게, 서럽게 울어서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는.
다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에
평일임에도 꽤나 먼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이젠 xs 사이즈가 맞는 어린 내 딸의 옷을 들고.
이 남자는 동물을 싫어했다.
강아지고 고양이고 일절 관심도 없었는데,
오직 나의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친해지려고 꽤나 노력해온 결과
처음 만날 땐 아이들 털에 부들부들 떨고 아이 침이 묻었다며 이불 빨래를 해야 한다 하더니만
이젠 애들 화장실을 혼자 알아서 척척 치우질 않나, 애들 토한 것도 쓱 닦아내고
밥 안에 털이 얹어지는 것 정도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넘어가곤 한다.
아이들을 보기 위해 기꺼이 방바닥에 납짝 엎드려 침대 밑을 들여다 보며
마치 자신의 아이라도 되는 듯, 자신의 친구들에게 아이들 사진을 찍어 자랑하곤 했는데
그런 그가 처음 마주치는 아이와의 이별이,
그에게는 몹시 충격인 듯, 나보다도 더 많이 울음을 삼키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아이는 겨우 주사기로 넣어둔 밥을 토하고
진통제가 가득 든 캡슐을 토하고
덕분에 캡슐이 터져 입안 가득 거품을 물고 켁켁댔다.
나는 쫓아다니면서 아이를 닦아댔고 등을 두들겼고 입을 닦았다.
그 부산함을 멍하니 앉아 보고 있는 남친에게 나는 그저, 쓰게 웃어보였다.
왜 내가 못 우는지 알겠죠?
울 틈이 없어요, 눈물이 날 틈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나는 오늘 물러나지만, 내일은 다시 아이를 붙들고 약을 먹일거고 곱게 간 밥을 다시 먹일 거고
그래도 안 되면 애를 들고 뛰고 수액을 맞추겠죠. 아이를 붙들고 울 틈 같은 건 없어요, 정말이지...
그는 빨개진 코를 훌쩍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 어린 얼굴로 나를 안았다.
누나가 참 힘들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파요.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내일을 위해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전에 맛있게 먹었다던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었다.
힘들고 번거로우면 안 해도 돼요.
지난 번에 먹을 때 맛 괜찮았어요?
엄청 맛있었어요! 엄청 엄청.
그럼 해줄게요.
오래 걸리면 안 해도 돼요.
오래 안 걸립니다. 금방이니 가져가요.
그는 미안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얼굴로 식탁 모서리에 앉아
천천히 데친 방울 토마토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고
양파를 잘게 다지고 생바질을 뜯어 가위로 툭툭 잘라내는 걸 지켜봤다.
레몬이 없지만- 레몬즙으로 대체해요. 라는 말에 그는 손사레를 치며 다 좋아요, 다 좋아. 라고 말했다.
레몬즙과 올리브 오일, 후추, 소금 약간에 꿀을 넣고 빠르게 버무리면 끝.
이미 껍질이 벗겨져 부드러운 방울 토마토라 힘을 주면 으스러질 수 있으므로
아주 가볍게 섞어주고 소독한 병에 넣어주면 끝이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입버릇이 되어버린 그 말이,
어쩐지 나는 내 쪽에서 더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늘 많은 것을 주기 위해 애쓰지만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경험이 적어
미숙하고 헛발질에 뭔가 항상 부족하고 나사 빠져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귀한 집 자식, 잘 사는 집 자식이라 세상 물정 잘 몰라- 곱게만 자랐던 그가
퍽이나 억척스럽게 고양이들을 키우며 사는 나를 사랑하여 겪는 이 모든 힘겨움과 아픔, 슬픔이
나는 참 미안할 때가 많다.
가서 메세지 할게요.
잘 먹을게요.
자랑하면서 먹을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주말에 또 올게요.
나나 옷 하나 더 샀으니까 들고 올게요.
아프지 말고요, 일찍 자요. 힘들지 말고요. 밥 챙겨요.
어휴- 안 가? 차 놓치겠다! 가서 또 할 거 있다면서요. 가요, 얼른.
네네, 갈게요. 누나.
갈 때조차 부산스럽기도 한, 어린 나의 남자친구가 가면서 신신당부한 한 마디.
누나.
첫째는 내가 같이 못 했지만 혹시... 나나 장례식장엔 꼭 같이 가요.
같이 가줄 테니까, 혼자 슬프게 가지 말고 꼭 같이 가요.
많이 울더라도, 꼭 같이 갈게요.
나를 사랑하는 내 남자친구는 이런 남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