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빠뉴
2010년 어느 초겨울,
자주 찾는 고양이 카페에 보기에도 다급한 글이 올라왔다.
어떤 고양이가 공장에서 몸을 풀었는데,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고.
이미 공장 주인은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당장 고양이들을 "치우라" 엄포를 놓았다고.
그랬다.
그 글을 봤고 그래서 꼬물 애기들을 봤는데
아이들의 엄마가 우리 둘째 딸이랑 똑같애서 신기했고
그래서 그냥 보러 간 거였고, 칠 남매라는 게 놀랐고 돌아오는 길엔
이동장 하나 없이, 아이 몸 25배가 큰 박스 안에 담요 하나 없이 덜렁 담겨온 아이가 있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박스가 너무 커서 그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데도,
비명을 지르는 건 나였지, 일곱 남매 중 막내라던 아이는 아니었다.
나비처럼 살아가길 바랐다.
자유롭고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서 아이 이름은 나룽이가 되었다.
제일 맏이 아이와 둘째가 부모처럼 아이를 돌봤고
그에 보답하듯 아이는 큰오빠와 큰 언니를 정말 잘 따르면서
우리 집 실세로 잘 자라줬다. 실상 성격도 꽤나 대범하여 장군감이었으니까.
정말 거의 손 안 탈 정도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줘서 늘 감사한 아이였다.
간혹 좀 심하게 토하긴 했어도 헤어볼 때문인 경우가 많았고
신나게 놀다가 찢어진 덕에 꿰매야 하는데,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 엄마를 위해
고양이로서는 말도 안 되는 전신마취가 아닌 '부분마취'를 하고서도 옆구리를 꿰맬 수 있었다.
그때도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얌전히 있던 그런 아이였다.
큰 오빠와 언니, 작은 오빠, 동생과는 달리 늘 혼자 있길 즐겼던 아이.
살아생전 저 아이를 힘껏 제대로 안아볼 일이 생기긴 하려나- 했는데
팔 사이에 낑겨서 으쌰 으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자리를 잡곤 어깨에 턱을 괸 채 잠든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찌잉- 하고 감격하곤 했다.
이제야 겨우 맘껏 안아줄 수 있겠구나, 몽글하고 하얀 아이를 품에 안고 등을 두들겨 줄 때
아이 등에서 울리는 고릉 고릉 소리가 그렇게도 달콤했는데
이주 전 갑자기 아이가 눈에 띄게 메말라가는 게 보였다.
어? 왜 이러지? 하기도 전에 아이를 안아 올리면 털이 빠지는 게 아니라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이사를 꽤 멀리한 덕에 원래 다니던 병원 대신 근처 병원을 숙고하고 숙고해 찾았는데
아이에게 주사를 놓고 봉합되어서 나도 그렇게 치료가 끝난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주 치료가 끝났음에도 아이는 먹는데도 살이 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촉으로는 이게 아닌 듯 해서 결국 노트북과 아이를 싸 들고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달려갔다.
혈액검사 해주세요. 초음파든 뭐든 다 해주세요. 이상해요. 아이가 너무 얌전해요.
아이의 속에는 큰 종양이 퍼져 있다고 했다.
불과 이주만에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면 악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설령 악성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13살인 아이를 전신마취에 개복한다는 건 권하지 않는다 했다.
일찍 발견했다고 해도 나을 것이라는 확정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고도 했다.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라고 묻는 나에게
얼추 10년간 우리 아이를 봐주던 상냥하고 다정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
링거를 맞고 나온, 이젠 깃털 같아진 아이를 안고 수고했어라고 말해줬다.
그게 어제의 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스스로 먹곤 했는데 오늘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젤 큰 놈도 그러더니,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아이는 시들어 간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엉덩이와 허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줬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 밥 먹자. 약도 먹고.
근데 너무 아프면 괜찮아, 엄마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가.
오빠한테도 똑같은 이야기 해줬었어, 안 힘들면 엄마 안 힘드니까 버티는데
네가 너무 아프고 힘든데 엄마 걱정 때문에 못 떠나는 거면 안 그래도 돼.
엄마는 네가 1순위야, 엄마는 그래. 엄마는 네가 안 아픈 게 제일 중요해.
이동장에 잠시 대기시키고는 낮시간에 장을 봐온 재료들로 강급식을 데웠다.
여기저기 하루 종일 검색해 보고는 브로콜리와 당근, 원래 먹던 사료에다가
식욕을 촉진해 준다던 츄르, 그리고 장 영양제까지 넣고 북북 갈아대고는
작은 팩에 소분해 냉장고에 충분히 쌓아두고는 하나를 꺼내 데웠다.
수건으로 돌돌 말아 주사기 한 입, 등을 쓸어주고 입을 닦아주고 또 한 입.
삐약-해도 조금만 더, 라고 해서 15ml 정도를 먹였다.
지 오빠도 꼭 그러더니, 먹은 것 자체를 토하진 않는다.
하기사 첫째도 토하면 그때부턴 양상이 달라진다, 하고 처음 토하던 날 그대로 떠났는데.
큰 애도 반년은 살 거라고 하시더니. 한 달만에 그렇게 훌쩍 갔다.
아프기 전에, 힘들기 전에, 동생들과 다 인사하고 후루룩 날아갔는데.
울 틈이 없다. 울 수도 없고, 슬퍼할 짬도 없다.
나룽이 병원비도 벌어야 하고 남은 아이도 셋이다.
아이만 붙들고 슬퍼하면서 아이가 기대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씩씩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나에게 기댈 수 있으니까.
아이 입맛을 돋을 수 있을 게 뭐가 있을까,
지난날들을 더듬어 보니 간식에 크게 관심 없던 넷째가 유일하게 관심 있던 게 바로 빵.
빵순이었는데 많이 안 된다고 해서 늘 입맛만 다시게 하곤 했다.
아이의 입맛을 찾게 하는 게 우선이니, 일단 먹어야 사니까
먹어야 속도 덜 아프고, 진통제도 잘 들 테니까
아이에게 빵을 아주 조금 먹이는 건 괜찮다고도 했다.
그래서 오늘 도서관에 가서 빵 관련 레시피 책을 빌려왔다.
내가 찾아둔 빵 중에 가장 자극이 적은 빵이 깜빠뉴였다.
아이는 조금 킁킁대고 아주 조금 입을 대고는 맛을 봤다.
그래도 기뻤다.
나을 수 없다면, 이제 정말 완전히 이별일 거라면
아이가 조금만 더 내게 도망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프지만 않기를. 힘들지 않길.
첫째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에도, 그 뒤 네 아이를 만났을 때도 한 약속.
죽는 순간까지 엄마가 같이 있어 줄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길.
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다시 기운을 내서 엄마에게서 열심히 도망치길.
사랑한다.
그 말 외에는 참 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 날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