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짝을 후려치며 "울어!"라고 말하던 선배 생각이 났다

마늘 포카치아

by 유리심장

지난 주 월요일 밤.

잠들기 전 현관 매트에 있던 아이에게 잘 자라고 볼을 쓰다듬는데,

익숙하고도 낯선 냄새가 났다.


아이가 그 자리에서 소변을 지렸다.


걷지도 못했던 첫째와는 달리, 넷째는 화장실에 주저앉을 지언정

끝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런 아이가 누운 그 자리에서 소변을 지렸다는 건... 정말, 끝이 다가왔단 소리겠지.


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안아들고 아이들 물티슈로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히고 주사기 밥을 먹였다.


괜찮아, 아가. 괜찮아.

아가 안 힘들 때까지만 있어. 억지로 막 힘내지 않아도 돼.

네가 괜찮을 때 가. 네가 괜찮으면 머물고. 엄마는 엄마 힘든 것보다 너 힘든 게 더 힘들어.


아이는 가만히 울었다.

얼마만에 들어본 아이 목소리인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안고 자고 싶었지만 기어코 아래로 내려가겠다 떼쓰는 통에,

침대에서 떨어지는 게 더 큰 문제라 아침에 봐- 인사하곤 아이를 침대 아래로 내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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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뜨자마자 아이를 찾았다.

안녕? 하고 아이를 보았을 때 난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밤새 나를, 기다렸구나.


이젠 떠날 때가 되었어, 엄마.라고 말하고 싶은 듯,

아이는 계속 나를 불러댔다.


당황스러울만큼 발작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비명을 질러대지도 않았다.

하지만 있는 힘껏 커진 동공은 아이가 처음 느껴보는 느낌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걱정마, 걱정하지 마.

엄마는 여기 있고 네가 떠나면 바로 오빠가 바통터치할 거야.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어. 괜찮아, 다 괜찮아. 사랑해. 몹시 몹시.


길고도 긴 숨을 내뱉고 아이가 떠날 때, 나는 이미 차가워져 굳어가는 손을 꼭 잡아줬다.


그게 화요일 아침 9시 정도였고, 바로 나는 연차를 냈다.


화요일 밤에는 미친 폭우가 내릴 거라더니, 장지까지 가는 길엔 빗방울 하나 안 떨어졌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화장을 끝낸 아이를 안고 남자친구와 함께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 몹시 어두운 국도를 달리면서 비가 쏟아지면 어쩌나 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이젠 꽤나 밤눈이 어두어진 나를 아이는 살핀 게 아닐까.

집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목요일과 금요일 모두 연차를 냈다.

수요일이야 어쩔 수 없이 출장 일정이 있어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나는 숨을 쉬어야 했다.


그래서 혼자 차를 몰아 늘 가던 강원도 한 바닷가를 달려갔다.

비가 오는 날이여서 그런지, 해변가에는 사람 하나가 없어 혼자 우산을 쓰고 오래도록 걸었다.


아이 이름도 해변가에 써보기도 하고, 주머니에 넣어갔던 아이의 작은 옷을 꺼내 코를 묻기도 하고

조용히 음악을 듣기도 하고, 허벅지가 젖도록 바다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들어올린 우산 위로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와 파도 소리, 바람 소리.

그 안에서 나는 반복해서 아이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벌써 남친은 아이가 꿈에 나왔다는데,

나는 꿈에서 보기는 커녕 아직 울지도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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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치아를 구었다.

고작 밀가루와 이스트, 물, 그리고 약간의 올리브 오일이 다인 심플한 포카치아.


우리 넷째도 그랬다.

늘 더할 것도 없이, 덜할 것도 없이 플랫한 아이었다.

조용하면서 단단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했던 아이였으니까.


소금빵이 아니라, 포카치아를 구어줬으면 좀 먹어줬을까.

이젠 물어볼 수도 없는데, 아이에게 물어볼까? 잠시 생각했다.


참, 이젠 아이가 없지.


그래서 마늘을 편슬라이스해서 볶아낸 다음 부푼 반죽 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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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빵이 오븐안에서 구어지는 걸 들여다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났다.


하나는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건데,

유명 잡지사 편집장이었던 작가가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도 불구, 훌륭한 미망인 역할을 해냈다는 것.

그래서 손님들도 잘 맞이하고 장례식 예약 및 처리도 잘 마무리했고

남편 옷가지들도 기증하거나 버리거나.


누가 봐도 의젓하고 차분하고 근사한 미망인이었던 그녀가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남편의 신발 만큼은 버리질 못했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신고 다닐 게 없음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생각이 정확하게 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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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대학생 때 일인데, 대학교 1학년일 때 일이다.


어느 날엔가 과방에 들어갔더니, 동기 하나가 무슨 일이 있는 듯 주절 주절 선배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회색빛이 돌 정도로 창백해져 있는 동기였지만, 울지 않고 차분히 설명하는 걸 봤는데,


갑자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여선배가 애 얼굴을 들여다 보더니

동기 팔꿈치를 움켜쥐고는 정말로 세게 등을 때리면서 "울어! 울라고! 울어야 살아!"하고 외치는 거다.

나도, 동기도 영문을 모를 표정이었다가 동기는 결국 아파서 운 건지, 어쩐 건지

무언가 터지듯 커다랗게 울어댔다. 위태롭게 버티던 게 무너져 내리듯, 그 선배에게 안겨서.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선배도 고작 22살, 23살이었을 텐데

어떻게 알았을까. 그 순간에 울지 못하면 영영 안으로 곪아 썩어들어갈 수 있다는 걸.


만약 지금의 나를 그 선배가 본다면 나도 역시 등짝을 세게 맞았을까.

울어, 울라고, 울어야 살어. 라고 외치면서 퍽퍽 소리가 나도록.

그 때의 선배보다 두 배는 더 살아온 나의 등을 그녀는 그렇게 때려댔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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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아이가 참 보고 싶다.


익숙한 내음, 익숙한 목소리, 몹시도 부드러웠던 귀 뒤의 털.


아직 나에겐 셋이나 남았고 나는 아이들에게 눈 감는 날까지 같이 있어주겠다 약속했으니,

또 다시 살아가야겠지. 그래야 다른 아이들도 옷깃 잘 여며 보내줄 수 있겠지.


고단하다.

심신이 지친 것 같다.

울기라도 펑펑 울었으면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게 된 나이가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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