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지 못한 슬픔이 콧잔등와 이마에서 송송 피어났다

크림 브륄레

by 유리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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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흐르지 못한 슬픔이 엉뚱한 곳에서

아이가 떠난 이후 바다를 보고 왔고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했다.

다들 안타까워하며 잘 지낼 거라 건네는 인사에 고개도 끄덕거리고,

또 남은 아이들도 부지런히 챙겨야 했다.


요즘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제철 둘째와 셋째는 냥냥거리면서 간식 달라 아침저녁으로 성화다.

약을 먹이고 뭐라도 먹여야 하는 넷째 덕에 숫자가 부쩍 늘어난 간식을 줄여야 하지만,

화장실 축축한 바닥까지 쫓아와서 칭얼대는 아이들을 이겨낼 만한 엄마는 없다.


기어코 간식을 쟁취하고선 꽤나 의기양양해하는 아이의 축축한 발을 닦으면서 으이구- 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러니 푹 퍼져 이불이나 베개를 붙들고 엉엉 울 짬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기가 왔다.

감기가 걸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 그냥 무심히 넘겼다.

아침에 어? 싶어도 저녁이 되면 괜찮아지곤 했었으니까 또 그래지겠지, 했다.

병원 가야 한다는 남친의 성화에도 귓등 대답으로 넘겼는데,


심상치 않았다.

통증이 몰려오고 목이 붓기 시작하고 코가 막히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비상약을 털어 넣고 이불을 덮은 채 누워도 달라지지 않는 몸상태에

약간은 당황스러워져 버렸다.


하루는 코가 모두 막혀 입으로 숨 쉬는 통에 입이 다 말랐고

하루는 목이 너무 아프고 혓바늘이 다 서서 물 한 모금 마시기도 힘겨웠다.

기껏 약을 써서 코를 뚫어두고 목을 가라앉혀뒀더니 두통이 찾아와 밤을 계속 뒤척이게 했다.


결국 월요일 아침 7시 반.

다 터진 목소리로 "저, 오늘 재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전화했다.

그렇게 지난주를 보내고 이틀을 쉬었는데도 여전히 감기는 멀어질 줄을 모르고 있다.




영 입에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짜고 맵고 그런 거 아니어도 좀 입에 부드러울 것이 필요했다.

부드럽고 촉촉하고.. 상냥한 것.


일전에 아몬드튀일을 만들다 남은 계란 노른자가 생각났다.

우유와 생크림, 그리고 바닐라 익스트랙을 넣고

살짝 끝이 몽글몽글할 정도로 끓여 천천히 노른자 위에 부어서

오븐에 찌듯 구워낸 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차갑게 식은 뒤 설탕을 얇게 한 겹 깔고 토치로 태우니

달콤하고 따뜻한 향이 금세 피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위에 한 겹, 토치로 태워내고

다시 빠르게 식히기 위해 냉동실 직행시킨 뒤

대략 10분 정도 지나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브륄레가 탄생한다.

아이 살결만큼이나 달콤하고 부드럽고 상냥한 디저트.




작은 티스푼으로 위를 탁탁- 깬 뒤에

촉촉한 푸딩과 바스러지며 아삭거리는 설탕 이불을

같이 듬뿍 떠서 입안에 넣으니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서러운 맛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참은 건 아닌데,

기껏 흐르지 못했던 슬픔이 엉뚱하게 터져 나와

감기 몸살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겨드랑이 제모를 하면 엉뚱하게도 콧잔등이나 무릎에서 땀이 찬다던

그 이야기가 왜 불현듯 생각이 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젠 회사 나갔다가 쫓겨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기 옮기지 말고 충분히 쉬다 나왓! 하는 덕담과 더불어

기껏 비 오는 월요일 아침 한 시간 반을 헤집고 갔더니만, 점심때 쫓겨났다.


그리고 오늘은 재택.

내일은 급하게 낸 휴일.


남친 꿈에 아이가 간혹 찾아간다 한다.

너무도 건강한 모습으로, 너무도 뽀얗게 살이 오른 채

스프링처럼 통통 튀어 다니는 모습으로 나타나 남친을 웃게 한다고.


내 꿈엔 이틀 전 한 번 나왔는데,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를 쏙 빼닮은 아이였다.


마주하면, 너무 크게 울어버릴까 싶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질까 싶어 안 보이는 건가 싶기도 하고.


감기는 빨리 나아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이거고 저거고 자꾸 귀찮아진다.


슬픔은 흘려야 한다. 흘려내야 다시 새로운 것들로 채워진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미처 흐르지 못한 슬픔이

이번 감기의 열로 빠져나가기를, 지금 흐르는 비에 씻겨 나가기를.


날이 개거든,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들고 아이와 함께 북한강 나들이를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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