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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Feb 11. 2022

(에세이)‘만약’이라는 약

내가 ‘만약’이라는 약을 만들었다면?

만약이라는 약


내가 ‘만약’이라는 약을 만들었다면?

만약은 만일 동안 쓸 수 있는 만개의 약이다.

만약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다.

만약으로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

만약으로 아픈 기억도 지울 수 있다.

만약으로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만약은 조그만 흰색 약이다.

소원을 빌고 한 알을 먹으면 약효는 딱 24시간.

매일 같은 시간에 먹으면 약효가 지속된다.


약의 성분은 한여름에 내리는 눈 2컵,

유니콘 뿔의 가루 1스푼,

천년  나비의 부러진 날개 1.

솥에 넣고 한 시간을 끓이고 졸여

동그랗게 만든 다음 하루 동안 얼려두면

진주알 같은 하얀 약이 완성된다.



내가 '만약'을 만든 이유는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였다.

꼬박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도 1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가슴속에 잊히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을 보고 싶어서였다.


주문을 왼다. 오블리비아테!

고통 속에서 눈물과 사랑의 주문을 더 강하게 넣는다.


드디어,

나는 '만약'이라는 약을 만들어냈다.

그를 찾아 긴 시간을 헤매고 또 헤매었다.

하지만 '만약'을 그에게 먹일 수가 없었다.

10년전에 떠난 사람에게 만약을 먹일 마법은 없었다.

눈물로 되돌아와달라고 애원해도 이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만약을 먹는다.

내가 잊는다.

내 상처를 안는다.

내 기억을 덮는다.

내가 만약을 먹고 만일 동안

돌이 된 가슴을 사랑으로 껴안는다.

만일은 거의 30년의 세월.

30년쯤 지나고 나면

아픔도 고통도 나를 위해 온 것임을 알고

껴안은 고통을 보석처럼 캐어 낼 것이다.


사실 나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겠지만

'만약'의 힘을 알고 싶다면,

당신의 내면에서부터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누군가 타인의 위로만 기다리던 내가

스스로 조제한 약을 한 알씩 먹고 나아갑니다.

점점 약효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약은 나를 위로해 주고, 결국 주변도 함께 치유하는 힘도 주었습니다.

그렇게 ‘만약’은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글로 된 만약은 만 시간의 법칙처럼 채워지고 더 촘촘하게 허전했던 노트를 메웁니다.

감사의 글이 내 허파를 채우고 폐와 기관지의 헐거워진 구멍들을 메우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조금 더 깊고 길게 숨 쉬고 있습니다.


기억과 상처의 글은 비록 서랍 속에 넣어두어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더라도

그 글을 쓴 내가 읽고 결국 내 상처가 낫습니다.

아픔이 눈물로 씻겨갑니다.

그리고 천천히 딱지가 앉습니다.


상처의 흔적은 나라는 사람을 드러냅니다.

내가 아름다움으로 느끼면 그것은 결코 숨기고 싶은 흉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불순물이 조갯살로 파고들었습니다. 조개가 그 아픔을 품고 스스로 껍데기를 만들던 분비물로 자신 안의 고통을 감싸고 또 감싸 수천 겹 이상의 층이 쌓인 그 이물질이 진주가 됩니다.

품지 않으면 그냥 조개이고 자신의 아픔을 품으면 보석을 품은 진주조개가 되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을 내 안에 깊게 껴안고 나면 마법의 ‘만약’을 그 어떤 희귀한 재료도 필요 없이 내 안에서 직접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이 좋아하는 진주라는 보석은 조개에게는 한낱 아픔일 뿐이겠지요.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그들의 아픔이자 눈물이 만든 보석에 가치를 매깁니다.

자신을 더욱 빛나게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 눈물을 목에 겁니다.


내면의 보석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자신에게 닥친 고통에 원망하고 포기합니다.

힘들더라도 그 상처를 안고 보듬으며 그 여정을 조금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온 자신만이

그 보석의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스스로 그 보석을, 자신의 진주를 자랑스러워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법약 ‘만약’ 에 대한 글을 쓰다 남편의 예전 휴 Hue 앨범에 이적님이 부른 Magic’ (2003) 이라는 노래도 떠올랐습니다.

*보글보글 매거진의 2월 2주 주제

‘내가 만약~ 라면’ 으로 글쓰기’ 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 글, 송유정 작가님의 동화 <Step by Step~ > 입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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