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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09. 2022

(동화) Step by Step~

아침부터 호진이는 바빴어요. 개학 첫날이었거든요. 평소와 달리 오늘은 엄마가 깨우기 전에 일어났지요.

"웬일이래? 누구냐 넌! 호진이 맞니? 여보~~ 이리 좀 와봐요~ 아니 글쎄,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던 애가 오늘은 벌써 일어나서 씻고 옷까지 싹 입었지 뭐예요?"

"뭐라고요? 어디 어디. 옴뫄~~ 호진아. 새 학년이 되더니 달라지기로 결심한 거야? 침대 이불 정리도 싹 해놨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엄마 아빠가 이렇게 놀라다니, 호진이는 살짝 부끄러워졌어요.

"말해봐 호진아~ 왜 그런 거야? 5학년이 된다고 하니 바른생활 어린이가 되고 싶은 생각이 막 들고 그러는 거야?"

"아우 참, 그만하세요~ 저도 이제 제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하려고요."

"그러니까, 왜 갑자기 그러냐고~"

"음....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건 비밀이에요."

엄마 아빠의 갖은 회유와 협박이 있었지만 호진이는 이유를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요. 약간 쑥스러운 이유였거든요.


새 학년이 시작됐지만 호진이에게 크게 다를 건 없었어요.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었고 선생님도 4학년 때 옆반 선생님이셨거든요.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현우도 같은 반이라는 거였지요. 1학년 때 놀이터에서 둘이 크게 싸운 이후로 현우는 호진이가 무슨 말만 하면 깐죽거리고 놀려댔어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며 호진이도 자꾸 대꾸를 했더니 이제 둘은 앙숙이 돼버렸죠.

'하... 올해부터는 정말 바른생활 어린이가 돼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겠다.'

호진이는 눈앞이 깜깜했어요.


"오올~~ 이호진~~ 네가 웬일이냐? 그렇게 바른 자세로 선생님 말씀에 집중을 다하고?"

1교시가 끝나자마자 현우는 호진이 자리로 달려갔어요.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얄미운 표정으로 호진이에게 말을 걸었지요.

"나 원래 집중 잘했거든?"

"아니거든~? 너 원래 공부도 안 하고 멍만 때리는 거 내가 다 알거든?"

"신경 꺼라~ 나 이제 네가 뭐라고 해도 아무 말도 안 하기로 결심했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현우는 호진이를 살살 약 올리기 시작했어요. 호진이는 이를 악물었죠. 평소 같았으면 호진이도 지지 않고 받아쳤겠지만 오늘은 꾹 참으며 마음속으로만 공격했어요.

'어쩔 어쩔 저쩔 저쩔 안물티비 안궁티비 뇌절티비 우짤래미. 지금 화났쥬? 킹받쥬? 아무것도 못하쥬? 녜녜녜녜 앨갰샙냬댸~~~'

속 시원하게 내뱉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안될 일이었어요. 자신과 한 비밀 약속이 있었거든요.


2교시가 시작됐어요. 담임선생님은 칠판에 큰 글씨로 <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라고 적으셨어요.

"오늘부터 5학년이 된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볼 거예요. 선생님이 말하는 꿈은 의사나 대통령, 선생님 등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 아니에요. 어떤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거나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희망사항에 관한 거예요. 즐거운 상상이라고 말하면 더 이해가 쉽겠네요. 2교시에 각자 써보고 3교시에 한 명씩 발표해보도록 할게요~"

아이들은 모두 연필을 잡고 천장을 바라보며 고민을 했어요.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은 있지만 선생님이 말하는 즐거운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현우도 마찬가지였어요. 도대체 뭘 쓰라는 건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지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호진이를 본 현우는 깜짝 놀랐어요. 호진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적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게다가 옆에서 본 호진이의 얼굴은 잔뜩 신이 난 표정이었어요.

'도대체 뭐라고 쓰길래 저렇게 신이 난 거야?' 현우는 궁금해 미칠 것 같았어요.


3교시가 됐어요. 제비뽑기를 해서 나오는 이름대로 발표를 하기로 했지요. 호진이 차례가 됐어요. 호진이는 떨리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발표를 시작했지요.

안녕하세요. 발표를 맡은 이호진입니다.     

저는 작년까지 참 한심한 아이였습니다. 아침에는 엄마가 깨워야만 일어났고 숙제도 제대로 해 온 적이 없습니다. 수업시간에는 멍 때리며 딴생각만 했고요, 공부는 왜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장난치는 것만 좋아했고 현우랑은 보기만 하면 싸웠고요. 한마디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죠.      
그런데 올해부터는 좀 바뀌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꿈이 생겼거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아닙니다. 사실, 너무 부끄러워서 엄마 아빠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오늘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저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매주 수요일 밤마다 식구들과 즐겨보는 프로그램인데요, 세상의 다양한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길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 초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나오지요.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참 괜찮은 사람들이더라구요.

유재석 아저씨와 조세호 아저씨 사이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저를 상상해봤습니다. 만일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떤 사람으로 소개가 될까? 어떤 걸 잘한다고 할까? 떨지 않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화면으로 보는 나는 어떻게 보일까?
어떤 때는 제가 유재석이 되어서 저에게 질문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상상만 해도 짜릿한 기분이었습니다.  
    
자꾸 상상을 하다 보니 이러다가 언젠가 진짜 출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잠시 이야기 나누자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평소에 준비를 해야겠더라구요. 말을 잘하고 퀴즈를 맞히려면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언제 출연할지 모르니 항상 깨끗한 몸가짐을 해야 하고요. 평소에 바른 마음을 갖고 있어야 얼굴 표정도 밝을 테니 나쁜 생각, 나쁜 말, 나쁜 행동을 해서도 안돼요. 가족들에게도 괜한 심술을 부리면 안 됩니다. 가족에게도 잘 못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 다른 사람에게만 친절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친구들과도 싸우지 않고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나중에 저한테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친구가 나오면 안 되니까요.   

'내가 만일 유퀴즈에 출연한다면 어떨까?'라고 상상만 했는데 저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습니다. 이거야말로 기분 좋은 상상 아닐까요?
그래서 말인데, 현우야~~ 이제는 좀 친하게 지내자~ 내가 유퀴즈 출연하면 네 이름 이야기해줄게~~
아! 그리고 제가 유퀴즈에 출연하면, 저는 유재석 아저씨랑 조세호 아저씨를 골고루 쳐다보며 이야기할 거예요. 어떨 때는 조세호 아저씨가 불쌍하더라고요.


호진이의 발표가 끝나자 친구들은 힘껏 박수를 치고 "와~~ 이호진~~ 멋지다~"라고 외쳤어요. 현우도 씩 웃음이 났지요. 현우도 유재석 아저씨와 조세호 아저씨 사이에 앉아 있는 자신을 상상해봤어요. 유퀴즈에서 봤던 다른 초등학생들은 모두 똘똘하게 말도 잘하고 표정도 밝던데 자기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졌어요. 그제야 호진이가 왜 오늘 그렇게 달라 보였는지 이해가 갔지요.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호진이에게로 몰려왔어요. 그리고는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죠.

"You Quiz?"



부끄럽지만, 저의 이야기입니다.

"만일 내가 ~~~ 라면?"이라는 주제를 받자마자 유퀴즈를 떠올렸습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마다 저 혼자 유퀴즈를 찍거든요. 유재석도 됐다가 조세호도 되면서 송유정에게 질문을 던지죠. 궁색한 질문과 보잘것없는 답변을 오가다 보면 제 자신이 보입니다. 아직은 유퀴즈에 나가 보여줄 게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고 괜찮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요.

동화 속 호진이처럼 즐거운 상상이 현실이 될 그날을 기다리며 나를 다지는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step by step~



*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전 글, 최형식 작가님의 동화 < 만약 티라노사우루스라면...> 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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