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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Apr 15. 2022

돌멩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것

돌멩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이 다 밝혀준다고 믿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유감인 책을 읽었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책을 혹시라도 읽게 된다면 더 이해하게 될 나의 제목이다. 그 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꿈꾸는 사람들을 몽상가라고 비웃는다. 과학자는 그 반대에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꿈꾼 가설을 현실에 증명해내려 의지로 똘똘 뭉친 과학자의 탈을 쓴 몽상가도 있을지 모른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천재적인 업적에 경외감이 지나쳐 그대로 믿어버린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무작정 따르고 싶어 져 큰 실수를 저지르는지도 모르고 산다. 수많은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이 한 말들 중 잘못 예측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게 허다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설을 세우듯 '돌멩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을 해본다.


집 근처에 남편과 자주 가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이름이 '알키미아 Alchimia'였다.

연금술로 만드는 아이스크림 가게라니..?

alchemy
 1. 연금술 2. 신비한 힘, 마력
라틴어 alchimia 프랑스어 alchimie
스페인어 alquimia 이탈리아어 alchimia


 가게는 원래  동네 카레 가게 주인이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그리고  카레 가게 주인장은 이전에 영어학원을 운영하던 원장님이셨다. (복잡하게 썼지만 암튼 같은 사람이다) 범상치 않은 주인장의 창업 스토리 때문에도 관심을 가진 가게가 되었지만 동네 작은 카레 가게지만 돋보일 만큼 남다른 서비스로 손님을 응대하는 태도가 서비스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로서도 감동이었다. 남편은  주인아저씨의 카레 가게 단골손님이었고 의외로 소극적인 나와 달리 통하는 사람들과 바로 마음을 여는 스타일의 남편은 주인장과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없어진 우리동네 알키미아 (2018)


작은 카레 가게만으로도 훌륭했는데 주인아저씨는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데 뜻이 있었고 창조적인 재료를 사용해 심혈을 기울인 비밀 레시피로 마치 연금술사가 단순한 원료로 값비싼 금을 만들 듯이 보석 같은 아이스크림들을 탄생시켰다.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레시피와 야심 찬 시도를 맛보았던 즐거운 그곳에서 우리는 어른과 아이를 섞어 또 다른 연금술을 시작했다.


그즈음 남편과 주인아저씨는 쉬는 시간 가끔 만나 자신의 재능을 서로에게 나누는 시간을 (영어와 음악 나눔) 가졌었는데 이것을 확장시켜 보면 어떨까 두 사람이 궁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미술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 또 부모님을 연결해 스스로 배우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다.


영어 선생님이셨던 주인장님이 아이들의 영어 선생님을 맡았다. 그의 주특기였던 어원으로 그림 그리며 영어를 알아가는 창의적인 방식의 영단어 학습법은 어른들에게도 신선한 배움이었다. 동시에 미술 선생님이 함께 있어 아이들은 한 장의 그림 속에 배운 것을 녹여내 무엇이든 내 것으로 만드는 비법을 연습할 수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의 시간에 옆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고 과정이 마무리되면 결과물을 직접 모두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가게 바로 옆의 놀이터로 달려 나가 놀았다. 그동안 부모와 선생님은 돌아가면서 한 명씩 자신이 정한 주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문 분야도 좋고 나눌 수 있는 무엇이든 좋았다. 그렇게 재능 나눔을 하는 동안 발표를 준비한 사람도 도움이 되었고 그 내용을 접하는 다른 사람들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짧은 시간 무척 소중한 배움이 될 수 있었다. 무엇이든 내 앞의 발표자-전문가에게 바로 질문을 하는 등의 소통이 있어 적극적인 배움이 진행되던 시간이었다.


만남이 이어지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우리는 알키미아에서 파티를 했다. 각자 서로에게 선물할 작은 것들을 하나씩 들고 와 나누었다. 소박한 음식을 조금 나누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 모여 게임을 했다. 아이 어른 모두 폭소를 터트리고 열렬하게 즐겼던 스피드 퀴즈나 몸으로 말하기, 초성 퀴즈가 이어지며 육아로 굳어있던 뇌와 온몸이 깨어난 것 같았다. 나는 아이도 어른도 동시에 이렇게 즐거운 시간도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고 마음이 흥분으로 울렁거렸다. 늦은 밤 아이들을 재워야 해서 먼저 자리를 떠나며 미술 선생님과 살짝 포옹하던 순간 결국 나는 이유 모를 눈물을 쏟기도 했다.


헤어지기 전 모두가 모여 앉은 단체사진의 우리들의 모습은 이상하게 가족사진 같았다. 새로운 세대의 대안 가족의 모습이랄까? 관계의 연결은 신기했다. 남편과 주인아저씨의 굵직한 연결 이외, 남편과 나, 나와 미술 선생님, 미술 선생님과 동생, 언니, 학생, 학생의 가족 미술 선생님의 제자, 그녀의 남자 친구, 또 주인아저씨의 제자, 그리고 제자의 여자 친구....

우리의 사진 위로 처음은 그러저러한 짧은 줄을 그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우리의 줄은 다른 새로운 줄이 더 두터워지고 한 사람에서 나가는 줄은 더 많은 수가 되었다.


그러나 연결은 시간 속에서 더 강해지고 또 약해지기도 한다. 아쉽게도 그 많은 연결에 행복했던 시간을 넘어 알키미아는 서촌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다. (지금은 지점이 더 늘어났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아쉬웠다. 영어 선생님이기도 해서 아이들 시간에 꼭 필요했던 주인장이지만 잡아 둘 수 없었다. 먹고 살 생업을 못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만들었던 아름다운 대안 가족이지만 가족이 새로운 자신의 변화를 위해 독립하는데 방해를 할 수는 없었다.


서촌 알키미아에 놀러가서 칠판에 낙서중

공동체의 단맛을 보았고 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연금술이 금을 만들기도 전에 해체되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그 숱한 연금술사들이 철을 녹이고 끓이고 하는 과정에서 오줌을 끓이다 인을 발견한 것처럼 이 만남의 경험에서 나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함께 하는 아주 작은 공동체의 희망을 보았다. 아주 어린아이들과 사춘기 청소년과 사회 초년생과 선생님 또 부모가 섞여 같이 놀이터에서 이어달리기를 하고 게임을 하며 같이 웃었다. 그러는 동안 몇몇은 지적인 나눔과 감동을 서로에게 주고받으며 변화하고 발전하며 제 갈 길을 찾아갔다. 육아로 못할 것 같던 배움과 만남이 한꺼번에 이루어져 부모가 행복했고 그 속에서 아이도 즐거웠다. 배움과 성장은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함께 있어야 조화로운 연금술의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연금술은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알키미아에서의 만남은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기준을 가지기보다 우리가 더 공감할 부분과 연결될 부분을 찾는 것의 중요함을 알게 해 준 만남이었다. 그렇게 가늘고 짧은 연결에서 시작해서 더 크게 이어질 관계에서 나는 조금씩 변하고 천천히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코로나로 느슨해진 인연의 끈이 되었지만 미술 선생님과 힘들 때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졌고 그 힘으로 글을 쓰고 책도 출간하며 계속 공부를 이어나갔다. 혼란스러운 세상 탓을 하며 비관적으로 주변을 걱정하기보다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데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지금 이 순간의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둥근 돌멩이는 아름다운 모양일수록 많이 부딪히고 깎여 자신의 모양을 갖춘 아이다. 상처도 경험도 많은 돌아 돌아 여기까지 온 아이다. 연결되어 있는 주변 돌멩이들이 있어 내 모습을 가지게 되고 경험들과 아픔이 다시 내 아름다움이 되어 있지만 자신만 모르는 경우도 많다. 부드러운 외양과 빛나는 광택이지만 단단한 돌멩이의 속성을 가지고 천천히 변화한다. 너무 느린 변화라 우리가 잘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만 분명히 변화해 왔다. 돌멩이들처럼 지구도 별도 동그랗게 서로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 별들은 서로 부딪히고 쌍으로 태어나거나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드러워 보이는 행성의 고리도 사실 바위와 자갈들이다.


모여있는 것을 멀리서 보면 부드럽고 가까이 보면 딱딱하다. 또 더 깊이 들여다보면 텅 비어있는 곳에 모두 같은 원소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나와 별과 돌멩이는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같은 존재라면

돌멩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
<코스모스> 칼 세이건 (458p)



억지로 연금술사가 금을 만들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억지로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이어 붙이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돌멩이 하나 안에도 우주가 담겨있는 물질임을, 그것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몰라 애를 썼기 때문에 결코 금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영원한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열망으로 금을 원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우리는 '변화'를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가장 고귀한 금은 우리의 내면에서 천천히 변화하는 의식으로 성장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는 마법사의 돌이다. 원래는 '현자의 돌' 이 제목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어려울 수도 있어 마법사의 돌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연금술사들이 찾아다녔던 현자의 돌은 전설 속의 물질이지만 결국 그 돌이라는 것이 물질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곧 은유로서의 어떤 힘을 가진 돌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 돌은 갑갑하게 내 마음을 크게 누르는 돌덩이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내면의 단단함일 것이다.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의 생생한 현장에서 내 발밑에 감추어져 있는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 결국 금을 만드는 연금술- '깨달음을 만드는 생각술'인 것이다.



4월 2주
보글보글 글놀이
사물 보고 글쓰기
'돌멩이'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의 동화 <반려 돌 K031>

*매거진의 이전 글, 보리 작가님의 <공깃돌 놀이>

* 매거진의 이전 글, JOO 작가님의 <다음 생에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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