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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pr 13. 2022

< 동화 >반려돌 K031

* 엄청 길어요...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읽으셔요~^^


< 목적지 도착 완료! >

여기는 루마니아 본부의 STONE U40.  STONE K031! 응답하라!
STONE K031. 잘 들립니다.
이동 완료했나?
현재 대한민국 경기도 모처에 자리 잡았습니다.
알았다. 다음 교신이 있을 때까지 꼼짝 않고 있도록!
걱정 마십시오. 이래 봬도 꼼짝 않는 건 자신 있지 말입니다!
STONE K031! 정신 똑바로 차려! 임무 완수를 앞두고 정체가 발각되면 그동안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단 말이다!
옙! 알겠습니다.


교신을 마친 K031은 주위를 둘러봤어요. 루마니아를 떠나 목적지인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30년이 걸렸어요. 손도 발도 없는 돌멩이가 국경을 넘어 8000km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반드시 가야 했지요.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었으니까요. 그 임무는 루마니아에서 출발한 모든 돌멩이가 각자의 수행 지역에 도착해야만 시작되는 것이었어요.


루마니아에서 가까운 유럽을 향했던 돌들은 이미 10년 전에 도착했어요. 일본, 호주,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를 향한 돌들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작전은 시작되지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까지 K031은 인간들에게 존재를 들키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건 돌멩이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지요. 어떤 인간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 관심을 두겠어요? 게다가 K031은 울퉁 불퉁하게 생겨서 인간들이 좋아하는 돌탑 쌓기나 비석 치기에 사용하기도 힘들었어요. 숨어있기에는 최적의 몸매였지요.


하지만 K031이 잘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었요. 지구 상에는 '어린이'라는 특별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어린이'는 호기심이 많았으며 활동적이었어요.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았고 엉뚱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지요. 어른은 그런 어린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린이는 그런 어른이 이해가 안 갔어요. 어른도 한 때는 어린이였는데 왜 어린이를 이해 못 할까 궁금했지요.


아무튼, K031은 그 특별한 생명체인 '어린이'중 한 명의 눈에 띄었고 아이의 손에 들려 집으로 끌려가게 되었어요. 자리 잡은 작전지에서 벗어난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K031은 곧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어요.

'그래, 좀 이동해도 괜찮아. 한국에서 벗어나는 것만 아니면 되지. 임무를 수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없어! 물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좀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 사는 곳에 물이 없겠어?'

이제  K031의 최종 목적지는 정체 모를 어린이의 집이 되었어요.


< 반려돌 >

어린이의 이름은 '동글이'였어요. 동글이는 K031을 집에 데려오자마자 욕실로 가서 깨끗하게 목욕을 시켰어요. 하얀 수건으로  K031을 닦아주고 드라이 바람으로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는 바람에 동글이의 누나로부터 잔소리를 들었지만 동글이는 그런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야! 무슨 그런 무생물을 씻기고 드라이까지 해주냐?"

"내 반려돌에게 함부로 말하지 마!"

"반려돌? 내가 살다 살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 반려견, 반려묘도 아니고 반려돌이라고? 동글아...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본데 반려라는 말에는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 있는 거야.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 돌은 처음부터 반려 뭐시기가 될 수 없는 거야."

"아니야! 내 반려돌은 달라! 살아있다고! 누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동글이는 K031을 두 손안에 폭 감싸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요.


K031은 깜짝 놀랐어요. 자신의 정체를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데 이 어린 생물이 어떻게 돌멩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궁금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정체를 들킬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방으로 들어온 동글이는 책상에 앉아 종이, 가위, 풀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인펜으로 쓱쓱 무엇을 그리기도 했지요. 그러더니 K031을 번쩍 들어 자신이 만든 '종이로 만든 집'안에 담았어요.

"오늘부터 여기가 네 집이야. 심심할 때는 TV도 보고 피곤할 때는 침대에 누워서 쉬렴? 아! 배고프지?  초코과자라도 일단 먹어. 이따가 물도 갖다 줄게~"

K031은 어리둥절했어요. 집이라니... 내 침대라니... 종이로 만들었지만 참 아늑했어요. 덥고 춥고 바람 불고 햇볕 내리쬐는 밖에서만 살다가 나만의 쉼터가 생긴 것이죠. 돌 평생 꿈꾼 적도 없는 일이었어요.


< 사랑? 그게 뭔데? >

다음날, 동글이는 학교에 가기 전 K031을 베란다에 놓인 벤치 위에 올려놓았어요.

"멩이야~ 심심하니까 여기서 바깥 구경하고 있어? 빨리 학교 다녀와서 놀아줄게~ 나 보고 싶어도 좀 참고~"

'멩이라고? 지금, 나를 멩이라고 한 거야?'  

K031은 주위를 둘러봤어요. 벤치 위에는 자기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멩이는 K031의 새 이름이었던 거죠.


20층인 동글이의 집에서는 주변이 한눈에 보였어요. 지나가는 자동차, 아파트 사이로 흐르는 하천, 그 옆에 나란히 자라난 풀. 어제까지만 해도 그곳 어딘가에 있던 자신이 오늘은 인간이 사는 집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K031은 베란다로 시선을 옮겼어요. 벤치 맞은편에 기다란 선인장 한그루가 서 있었지요.

"안녕? 선인장아?"

"어? 누구지? 누구야? 어디서 날 부르는 거야? 이 베란다에는 나 말고는 생명 있는 것이 없는데?"

"나야. 벤치 위에 있는 돌멩이."

"헐~ 대박! 무슨 돌이 말을 해? 너 돌 아니지? 이끼가 뭉친 거거나 돌처럼 생긴 생물이지?"

"하하. 나 돌 맞아. 난 말도 할 줄 알고 널 볼 수도 있어."

"뭐라고? 또 뭘 할 줄 알아? 네가 생물이라면, 자라기도 하고 아기를 낳기도 해?"

"응. 난 자라. 아주 오랜 시간 조금씩이지만 몸이 자라고 많이 자라면 내 몸을 조금 떼어내 아기를 만들기도 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원래 돌들은 그게 가능해. 약간의 물만 있다면 말이야. 네 화분에 있는 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이야. 다만, 지금은 자신들이 그런 존재라는 걸 모를 뿐이지.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만..."

"때가 되면? 어떤 때?"

"아니야.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너도 동글이의 반려뭐시기야?"

"응~ 난 동글이의 반려식물이야. 길가에 버려졌던 나를 데려와서 동글이가 이렇게 심었어. 난 윗둥이 잘려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선인장이라 버려졌거든. 그런데 동글이는 나를 데려와 화분에 잘 심어주고 가끔 물도 주고 이렇게 해가 잘 드는 곳에 집을 만들어 주었어. 참 사랑이 많은 아이야."

"사랑? 그게 뭐야?"

"사랑은... 몰라. 그냥 사람들이 얘기하길래 따라 해 본 거야. 동글이가 밖에서 뭘 주워와서 닦고 집을 만들어주고 말을 걸면 가족들이 그렇게 말하거든. 동글이는 사랑이 많은 아이라고."

"사랑... 나도 동글이가 밖에서 데려와 닦고 집을 만들어 주고 심심할까 봐 베란다에 데려와 주었지. 동글이는 나를 사랑하는구나. 너도 동글이를 사랑해?"

"그럼~ 동글이는 매일 학교 다녀오면 내게 와서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내 몸 이곳저곳을 살펴주지. 목이 말라 보이면 물을 주고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골고루 해를 보게 해 줘. 그래서 동글이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 이런 기분 처음이야.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는 기분."


그날 이후로 동글이는 등교 전 매일 K031을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어요. 학교에서 오면 베란다로 달려가 선인장과 K031을 앉혀두고 한참을 이야기했지요. 가끔씩 K031에게 물을 뿌려주었고 어떤 날엔 이불속에 데려가 함께 잠들었어요. 그렇게, 1년이 흘렀지요.


< 자라는 돌멩이 >

"엄마~ 아빠~ 누나~ 이것 좀 봐봐~ 멩이가 자랐어~"

동글이는 K031을 손에 들고 흥분해서 가족들에게 달려갔어요.

"엄마. 얘 뭐래? 처음엔 돌멩이를 반려돌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돌이 자랐대."

"진짜거든? 1년 전에 만들어 준 침대가 작아진 것 같아서 내가 길이를 재봤더니 1cm나 자랐거든? 확실해~"

엄마 아빠는 동글이를 향해 웃어주었지만 동글이는 알고 있었어요. 그건 자신을 믿는다는 웃음이 아니었지요. 그냥, 귀여워서 웃는 거였어요. 시무룩해진 동글이는 K031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어요.

"멩이야. 너는 분명 자랐어. 확실하다고. 처음에 왔을 때보다 무거워졌고 키도 컸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돌이 자라다니... 뭐라고 말 좀 해봐~"

"맞아."

"그지? 맞지? 그럴 줄 알았어. 헐! 대박! 내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돌멩이랑 대화를 한 거야? 나 미쳤나 봐."

"너 안 미쳤어. 난 말도 할 수 있고 자라기도 하는 돌이 맞아."

동글이는 너무 놀라 큰 눈이 더 커졌어요.

"정말... 말을 할 줄 안다고?"

"응. 그리고 난 멩이가 아니라 K031이야. 내가 자랄 수 있었던 건 다 네 덕분이야. 길거리에서는 1년에 1cm씩 못 자라거든. 정말 신기해. 네가 물도 주고 따뜻하게 해 줘서 그런 것 같아. 아마 '사랑', 이라는 걸 해줘서겠지? 너무 고마워."


동글이와 K031은 밤이 새도록 이야기했어요. K031이 여기에 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얘기하면 동글이는 지금까지 집에 데리고 왔던 많은 반려뭐시기들의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둘은 떠들고 웃느라 날이 밝는 것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 리셋 >

"그런데 너는 왜 루마니아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동글이의 질문을 듣고 K031은 말문이 막혀버렸어요. 그제야 자신의 임무가 생각났거든요. 1년 동안 동글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느라 때가 됐을 때 자신이 해야 하는 임무를 잊고 살았던 것이죠.

"내가 여기 왜 오게 됐냐면... 그건...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래~ 나중에 꼭, 얘기해줘?"

밤새 이야기 나누느라 피곤해진 동글이는 잠이 들었어요.


지구는 원래 돌의 것이었지요. 돌은 45억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큰 돌이 점점 작은 돌로 깎이고 흙이 되었어요. 거기에 물이 더해지자 작은 생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또 시간이 흐르니 생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수 많아졌어요. 450만 년 전에는 인간이라는 생물도 생겨났지요. 인간은 돌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어요. 무기로도 쓰고 농사짓는 데도 썼어요. 집도 만들었고 불을 만드는 데도 썼지요. 인간이 돌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돌은 움직임을 멈추고 입도 닫았어요.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았지요. 하지만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은 그런대로 살만했어요.


그런데 최근 100여 년 사이에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인간이 돌 말고 다른 것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생기면서 지구 환경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거예요. 심지어 플라스틱이라는 물건은 바다까지 오염시켰고 어떤 것들은 돌처럼 변신해서 돌의 존재까지 위협하게 됐어요. 루마니아에 있는 돌 본부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고 결국 이 모든 것을 처음의 상태로 되돌려놓자고 결론을 내렸지요. 지구가 처음 생겼던 바로 그때로요.

K031의 임무는, 루마니아에서 세계 각국으로 이동한 돌들의 임무는, '지구 리셋'이었던 거예요.


K031은 이 모든 이야기를 사랑하는 동글이에게 해줄 수 없었어요. 지구를 살리고 돌들을 살린다는 건 동글이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게다가 자신의 말 한마디로 돌들의 계획이 탄로 나게 된다면 K031은 돌들을 배신하고 지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인이 되는 거였지요. 거대한 작전을 눈앞에 둔 지금, 어린이라는 생명체 때문에 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어요.


잠이 든 동글이를 한참 바라보던 K031은 베란다로 나동이 트는 창밖을 보았요.

'지구가 정말 멸망할까?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없애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정말 최선일까? 가진 게 시간뿐인 돌에게는 지구 리셋이 별 거 아닌 일이지만 이 베란다에 있는 저 선인장에게는, 잠들어있는 동글이에게는, 저 밖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시간이 정해져 있잖아. 삶이 너무 소중하잖아. 다시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걸까? 이대로 끝내버려도 되는 걸까?'


K031은 살짝 열린 베란다 창문 앞에,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동글이의 애완돌 이야기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루마니아의 '트로반트' 이야기를 엮어보았습니다.

* 트로반트 서식지인 루마니아 코스테스티 마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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