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엄마가 너무 좋아서 엄마랑 꼭 결혼할 거야. 근데 다음 생에도 사람으로 태어나야 해. 동물로 태어나면 사람한테 잡아 먹힐 수도 있고 끔찍해! 엄마, 엄만 다시 태어나면 뭘로 태어나고 싶어?"
"글쎄, 엄만 별로 다시 안 태어나고 싶은데."
"아니, 엄마!!!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음... 돌. 엄만 돌멩이로 태어날래."
"돌멩이? 왜?"
"돌멩이는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면 되잖아. 편할 거 같아."
나는 돌멩이다. 내가 전생에 입방정을 떨었다고 한다. 다음 생에 돌멩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나?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솔직히 석생(石生)은 편할 줄 알았다. 그러나 돌 신세가 편치만은 않다. 어른들은 날 보길 돌같이 하여 건드리지 않지만, 동네 꼬마 애들이 날 가만 두지 않는다. 발로 툭툭 차거나 이리 저리 던진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거처가 수시로 바뀐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암석이 되겠다고 할 것을. 깊은 산 커다란 암석이었다면 움직일 일도 없이 항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암석도 암석 나름인 게, 설악산 흔들바위는 오가는 등산객들마다 죄다 흔들어 대는 통에 제대로 쉴 수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매년 만우절만 되면 흔들바위가 추락했다는 소문이 돈다. 나는 '흔들바위가 그렇게 쉽게 떨어질 리 없다고!'라고 외치면서도 혹시나 싶어 소문에 귀를 기울인다.
암석 중에 가장 명예로운 돌은 정상석일 것이다. 정상석은 산 정상에 가만히 있다가 사람들과 사진만 찍으면 된다. 이 세상에 이름 없는 암석이 태반이나, 정상석만은 각 산의 이름을 명찰 삼아 산다. 그런데 최근에 불암산, 수락산 정상석이 아래로 떨어졌다고 하니 참으로 요지경 세상이다. 정상석이 누군가의 힘자랑에 의해 그렇게 떨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명예로 먹고 사는 정상석 꼴이 말이 아니다.
그나저나 저기 누가 온다. 남자 아이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날 발로 차거나 손으로 집어들 줄 알았는데 쪼그려 앉아 나를 가만히 지켜 본다. 토실토실한 볼살, 한쪽만 쌍꺼풀이 진 눈, 동글동글한 코, 조그마한 입술을 가진 아이다. 가만, 얘 전생의 내 아들 한이랑 꽤 많이 닮았는데?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면서도 볼수록 한이와 닮았다. 그런데 얘는 뭘 하는 거지?
한이를 닮은 아이가 나를 들어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외친다.
“와! 보석이다. 이거 다이아몬드인가? 옥인가? 뭔지 모르겠네. 하여간 보석돌 득템!”
아이는 나를 제 옷에 스윽 닦더니 나를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데려갔다.
“한이야, 손 씻고 저녁 먹어라!”
“네, 보석돌 목욕 좀 시키고요.”
한이를 닮은 아이가 진짜 한이였다니!
한이는 나를 물로 깨끗이 씻어주고 자신의 보석 상자에 나를 넣어 주었다.
이제는 치일 일도 없고 편히 있을 수 있겠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돌멩이다.
“엄마, 엄마가 돌로 태어나면 내가 엄마 찾으러 갈게.”
“그래, 한이야. 다음 생에 우리는 사람과 돌로라도 꼭 만나자!”
다음 생에 뭘로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전 늘 돌로 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번 주 주제 '돌멩이'를 보고 반가움이 컸어요. 그래서 보글보글에 처음으로 도전하겠다고 무모하게(?) 내질렀습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올릴 때가 되니 '내 글이 보글보글 다른 글의 결과 안 맞는 거 아닐까?'란 걱정이 되네요. 부디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