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러 <간다>는 남편을 보내고 듣는 노래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러 <간다>는
남편을 보내고 듣는 노래
음악은 남편의 담당이었고, 승무원이었던 나는 여행 담당이었다. 나는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듯 이곳저곳 여행하듯 삶을 살았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 사이의 여행도 즐겼다. 남편은 음악 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다가갔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여행을 했다.
이 글은 승무원이었던 나와 작곡가 남편 우리 둘이 결혼한 후 만들어간 신혼집과 여행이 얽힌 음악 이야기다.
여행과 음악이 만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지금 삶의 영화를 찍는 중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짧은 음악 한 곡이라도 마치 영화 사운드트랙이 깔려 있는 듯 음악이 어우러지면 여행지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머문 장소의 추억을 여행이 끝난 그 이후에도 소리로 고스란히 담아 언제라도 내 귀에 꺼내 들어볼 수 있다. 그때 다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음악은 여행도 추억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많은 뮤직비디오가 자연 풍광이 멋진 장소에서 촬영된다. 스토리가 없어도 음악과 함께라면 단순한 사진 한 장이 지나가는 영상이라도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노래는 자연처럼 시간이 지나도 아름답다. 남편은 그런 영감이 필요한 음악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음악을 즐겼다. 오로지 한 곡만 반복해서 듣는 시간도 있었고, 또 인간이 만든 음악이 아닌 자연의 음악을 듣는 시간도 사랑했다.
남편이 음악을 하는 동안 나는 비행으로 혼자 떠났다가 돌아왔다.
우리는 주로 이런 패턴이었지만 반대였을 때가 있었다.
결혼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결혼 후 임시로 머물렀던 오피스텔을 떠나 신혼집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작고 오래된 아파트를 고치는 문제는 전문 인테리어 업자에게 맡기면 간단했다. 그런데 왠지 그때의 나는 요리도 살림도 모두 풋내기였던 주제에 내 손으로 집을 꾸며보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비행 다녀오는 전후 을지로를 들러 우리만의 집을 수리해 보겠다는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면서 서로가 집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하나씩 하나씩 기대하는 것들로 꾸며가는 집을 꿈꾸었다. 우리에 맞게 집을 고치는 과정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며 각자의 취향을 더 존중하며 함께 살 수 있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그 중요한 시기에 남편이 여행, 아니 일을 하러 가게 된 것이다. 나는 결혼 전부터 보물지도를 만들어 두고 원하는 것을 붙여두고 이루어지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보물지도에 추가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 추가 항목에는 '남편의 여행 프로그램 출연!'이라고 써둔 꿈이 있었다. 나는 신통방통한 보물지도의 위력을 알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때 꿈을 덧붙인 지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섭외 전화가 왔다. [EBS 세계 테마 기행] 팀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러시아 편'에 함께 하자며 한 달 정도 (사실 기억이 안 나지만 거의 한 달이 걸리는 긴 시간)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신혼집 인테리어, 이사의 시기와 촬영 일정이 겹쳐 망설이던 남편에게 나는 절대 거절하지 말라고 하며 혼자서도 잘 알아서 해볼 테니 걱정 말라고 보냈다. 그래서 나는 고난의 신혼집 인테리어의 시작과 끝을 혼자 하게 되었다.
고민이 많았다. 비행 전후 자는 것만으로도 바빴던 내가 인테리어 현장을 왔다 갔다 하고, 을지로를 헤매며 과연 처음으로 하는 인테리어를 허접한 나 혼자만의 발품으로 해낼 수 있을까? 그러다 결국 포기했다. 업체를 소개받았다.
인테리어 업체는 사실 마무리가 되고 난 후 극과 극의 사이로 바뀐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좋아서 새집에 초대하는 사이가 되거나 앞으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을 사이로 얼굴 붉히며 욕하는 사이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경우는 후자 쪽이 되려는 조짐을 보였다. 일을 맡긴 실무자와의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다. 소개여서 믿고 드렸던 신용카드는 자재 구입비로 쓰셔야 했는데 관계없는 다른 것들을 계속 결제하셨다. 불안했다. 믿음이 깨졌고 조심스럽게 여쭈어보려 했으나 오히려 화를 내셨고 무서웠다. 결국 진행 중이던 부엌과 바닥공사만 맡긴 후 그 외는 내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업자를 만나서 왔다 갔다 하며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일어난 갖가지 작은 사건과 피곤한 일처리들은 나와 친정엄마의 주름을 늘려주었다.
전쟁 같던 인테리어 일정이 끝나고 이사를 했다. 내가 비행 간 사이 미리 올라오셔서 도와주신 친정엄마와 함께 이사와 정리를 마쳤다. 힘드셨던 엄마는 비행 다녀온 딸이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나를 다시 재우고 쉴 새 없이 움직이셨다. 엄마 손길 닿은 부엌으로 가지런히 서랍장을 정리해 주시고는 더 이상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눈꺼풀이 쑥 꺼진 상태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그래도 얼마 후 내가 상상했던 평화롭고 포근한 모양으로 신혼집은 정리가 되어갔다.
그즈음 남편은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마치 집 개조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처럼 현관에서부터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아~~~" 하고 눈이 커지던 표정에 나는 빙그레 웃었는데, 이상하게도 금세 입꼬리가 삐쭉해졌다.
남편이 필요했을 때 없어서 속상했던 기억이 올라왔다. 문제가 있었을 때 이런 경우가 어딨냐고 막 따지기도 하고 억울하다 말해야 했는데 말할 데가 어디에도 없었다. 애꿎은 친정엄마만 속이 상하셔서 나와 통화하다 안 그래도 허스키한 엄마 목소리가 더 쉬어버렸다. 결혼은 했는데 힘든 순간 남편이 없었다. 내가 소원해서 남편을 멀리멀리 보냈으면서 필요할 때 없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실 러시아의 심한 추위와 긴 일정에 상당히 힘들었던 촬영이었었다.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카톡도 없었고 인터넷 전화도 러시아에선 쉽지 않았던 때였다. 특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일정은 길고 길었고 계속 큰 러시아 대륙을 이동해야 했던 촬영 일정에 어디에 있는지 숙소로 연락을 할 수 없어 오는 전화만 마냥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가 나도 비행으로 떠나고 말았으니 우리가 서로 연결될 기회는 더욱 없었다.
나는 인테리어로 엉망이 된 내 사정을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또 그의 힘든 상황도 잘 알지 못한 채 한 달 만에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나는 내 입장만 생각하다 보니 서럽고 속상했다. 결혼해서 같이 힘든 일을 겪자고 했는데, 함께 해쳐가자고 했는데 우리의 둥지를 엉뚱한 사람과 함께 오손도손? 만들어 간 것이었다. 이제 남편도 있고 결혼했으니 멀리서 지켜봐 달라고 걱정 말라고 엄마를 떠나 놓고선, 허구한 날 전화하고 불러올려 친정엄마를 고생시킨 것이 크게 마음에 걸렸었다.
반면 돌아온 그는 다 정리된 평화로운 보금자리에 사뿐히 날아들어와 "너무 좋다~ " 하고 웃는 자유로운 새 같았다. 기타를 맨 그의 순수한 얼굴은 아무 죄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서러워 울었었다.
아무튼 우리는 잠시 1달간의 이별을 지나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다시 알콩달콩 신혼의 시간을 이어갔다.
남편은 여행 중 만들었던 노래 <간다>라는 노래 외 몇 곡을 싱글로 발표했고 [세계 테마 기행] 방송에 삽입곡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글을 쓰기 위해 그때의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짧은 클립들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젊다. 지금의 목소리도 있지만 14년 전, 2008년의 목소리가 담겨있고 노랫소리가 담겨있다. 그의 이야기와 노래를 들으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 속 작은 객실에 나도 함께 타 있는 것 같았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 다시 보고 있는 지금의 기분은 굉장히 여유롭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놀랍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때는 몰랐던 그 모든 순간에도 신기한 인연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까지 9개월 동안 온라인 글방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매일 글쓰기를 연습하고 있다. 함께 글을 쓰는 글 친구 중에 방송작가님이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 알고 보니 남편의 내레이션 대본을 직접 쓰셨던 방송작가님이셨기 때문이었다. 십여 년을 지나고 굽이돌아 나에게 다시 연결된 인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연과 음악, 여행 그리고 사람의 인연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끈끈하게 연결하며 우리의 환경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글이기도 해서였을까? 유난히 방송에서 들리던 그의 말이 좋게 들렸다. 그것은 그녀의 글에도 느껴졌던 끌림이었다. 9,288km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길이만큼이나 긴 인연의 길이는 어떻게 살아가더라도 한 번쯤 알아챌 정도로 강력하게 서로의 연결된 끈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글을 쓰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에게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이 더 분명해졌다.
나는 생각만 하면 남편을 저 멀리 시베리아로 보내버릴 수 있었다. 또 힘든 집 꾸미기 발품 팔기로 그를 고생시키기보다, 대자연의 장엄함 앞에 서서 음악적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도 했다. 성스러운 바다라 불리는 지구 상 가장 깨끗한 바이칼 호수를 보며 노래를 만들 수 있게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방송 속 내레이션을 직접 써주신 작가님과의 우연한 만남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음악과 글로 사람이 연결되는 나의 경험을 이곳에서 새롭게 발견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최근 남편의 노래를 자주 다시 꺼내 듣고 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계속 틀어놓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한곡 한곡 여러 번 반복해서 그 노래를 만들었을 때의 그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나는 옆에서 분명히 보았었다. 음악이 나오는 과정을 보았다. 함께 열기를 느끼며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어떤 의미로는 전혀 듣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의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던 곡이었음을 이제 깨닫는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을 칭찬하는 꼴불견? 팔불출? 와이프라 생각해 비난의 눈흘김이 느껴진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창조하는 사람의 삶을 엇비슷하게 따라가 보며 조금은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 쓰거나 만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짐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으려나?
사실 그 노래는 이전과 똑같은 노래였다. 그런데 그 노래의 메시지는 지금의 나는 깨닫는 부분이 있지만, 그때는 그저 흥얼거리던 가사였을 뿐이었다. 음악이 가슴에 남아서 나를 울려주는 것은 멜로디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나는 그동안 낡고 오래되어 유행에 떨어지고, 버려질 사물들이나 인테리어 같이 쉽게 변하는 것들에 집착해 온 내가 보였다. 말하자면 곧 사라질 외적인 것에 에너지를 쏟아왔었지만 정작 내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는 관심과 에너지를 쏟지 못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눈을 가진 사람처럼, 처음 귀로 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음악을 들으려고 한다.
남편을 만나고
아이와 함께하면서
길고 긴 나의 내면의 기찻길에서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한다.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
간다.-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뮤지션 정지찬
함께 팀을 이루어 무대에서 노래하기도 하고(자화상, 원 모어 찬스), 그 어떤 연주자 없이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앨범 하나를 작사, 작곡, 노래, 연주, 프로듀싱까지 완성해 보였으며(원맨 One Man) 객원으로만 채워진 앨범을 내기도 했습니다(휴 Hue).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거나(이승환, 이소라, 김연우, BMK 등) 앨범 프로듀서(로이킴)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의 교수로 가르치는 일도 하고, 방송에서 음악감독으로도 살며 우리나라 일반 시청자들이 음악으로 감동의 눈물을 쏟는 순간 느끼게 되는 음악의 힘과 아름다움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음악인의 사명감을 가지고 25년간 왕성하게 음악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08년 2월 25일 1화 <김영하가 만난 시칠리아> 편으로 시작한 이후 평론가 이동진, 시인 신현림 님을 거쳐 남편이 출연한 7화 <뮤지션 정지찬이 만난 러시아, 9,288km 시베리아 횡단 열차> 편을 방송했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다시 보기 클릭
코로나19 기간 공백기에 세계 테마 기행 '스페셜'로 다시 보기 방송을 이어왔지만, 드디어! 7월 4일 터키 편부터 시작해 이탈리아, 괌& 사이판, 네팔로 다시 세계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네요. 반갑고 너무 기대되는 소식입니다.
*EBS 세계 테마 기행, 방송 7화 < 뮤지션 정지찬이 만난 러시아, 9,288km 시베리아 횡단 열차>
<간다> 음악이 나오는 영상 앞부분 잠시 맛보기 해볼까요?
*아쉬우신 분들은 조금 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무조건 한번 내려서 보아야 할 곳, 바이칼 호수가 궁금하시다면,
*음악을 끝까지 들어보고 싶으시다면,
<간다 >
작사 작곡 정지찬
하늘로 오르는 자작나무 숲길따라
태양이 떠오는 긴 호수위를 걸어
내맘이 부르는 그어딘가를 따라
내 모두 버리고 떠남이 그리워
간다~ 간다~
하얗게 내리는 긴 이길을 따라
설레는 배낭에 날기대어
간다~ 간다~
누군가 부르는 그 어디엔가로
설레는 내맘에 날기대어 간다
긴세워 살아온 오랜 대지위에 서면
우리는 모두 잠시 머무는 여행자
내가 가진것 내가 가질 그 모든것
모두 버리고 떠남이 그리워~
간다~ 간다~
하얗게 내리는 긴 이길을 따라
설레는 배낭에 날기대어
간다~ 간다~
누군가 부르는 그 어디엔가로
설레는 내맘에 날기대어
간다~
5월 5주
노래로 떠나는 여행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의 <지구 반대 편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 유정 작가님의 <거리에서>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