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음악이나 뮤직비디오 제목을 적어서 디제이 부스에 가져다주면 순서에 맞춰서 노래가 나온다. 단지 엘피판이나 디브이디를 틀어줄 뿐인데, 후줄근한 복장의 사장님이 멋지게보이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음악감상실을 찾았다.
저녁노을이 지고 식사와 커피까지 다 마신 다음 아무것도 없이 들르라는 유명한 콩치노 콩크리트는 상황과 가성비 측면에서 적절치 않았다. 어정쩡한 시간에 어수선한 상황이라 예전에 글벗이 소개해서 가보고 싶었던 카메라타로 발길을 돌렸다. 예상대로 소음인들이 북적였다. 편안해 보이는 의자보다는 어수선함에 동참하기 위해 테이블 좌석에 앉아서 에이드 한잔을 시키고 스벅에서와 다를 바 없이 키보드를 꺼내서 글을 담는다.
귀에 자꾸 거슬리는 소리가 있다. 옆 건물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음악에 섞여 들려온다. 사실 막귀라서 음악과 소음의 콜라보는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뒤쪽방화동댁과 친구 분의 고품격 잡담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신경 쓰인다. 분명 감상실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안내받은 게 없지만 내 상식에서 그들을 몰상식한 사람으로 규정한다.
음악감상실에서는 대화를 자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앞서다 보니 즐겁게 와서 불행해진다. 예전 코미디 프로그램 애정남이 생각났다. 애매한 상황에서 상식이 무엇인지 기준을 정해준다면 좋을 텐데, 불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스벅이었다면 이어폰으로 소음을 차단하고 듣고 싶은 음악만 취했을 텐데, 음악감상실에 와서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소음인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한참 글인지 욕인지를 휘갈기다 보니 소음인들이 나간다. 옆에서 실로폰 소리를 내던 셔터 장인은 퇴장 직전 난타공연을 한번 했고, 뒤에서는 어제 7단지 아주머니와 싸운 방화동댁은쇄빙선이 지나가는 것처럼 얼음을 이빨로 잘근잘근 하시더니 코 푼 휴지를 남긴 채 사라졌다. 때마침 묘하게 엇박자를 선사하던 박치 목수의 토르 망치도 땅에 박힌 듯했다. 많은 소음인들이 사라졌고 아내와 나를 포함해서 네 명만 남았다. 직원이 천장 한편에 블라인드를 걷는다. 하늘 창에서 나뭇잎 사이로 빛이 내린다. 광명이다.
티브이에서도 자주 봤던 유명한 라디오 디제이로 추정되는 어르신께서 힘들게 직립한 다음 보드판에 Cha로 시작하는 알파벳을 적는다. 음악시간 교과서에서 접했던 시베리아 전쟁국 소속 작곡가이다. 전쟁과 평화를 쓴 전범국 작가와 호두 깎기 작곡가를 헷갈리는수준이다 보니 연주를 듣고 나서 좋다 나쁘다 정도로만 표현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푸른 마을 8단지 소식을 주변에 알리지는 않는다.
십분 정도 연주를 들으며 평온함을 찾는다. 음악도 찾았다. 오래 앉아서 방화동댁과 함께하는 음악회 시간보다 짧은 순간 느껴지는 기분이 좋다. 정면에 설치된 여러 개 스피커 중에 어디서 소리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어떤 악기 연주 인지도 모르지만 듣기 좋은 소리가 귀를 통과해서 몸속으로 스며든다. 바쁜 일이 끝나고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켤 때,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뜨끈한 욕탕에 들어갈 때, 복잡하게 얽힌 일이 한순간에 해결되는 실마리를 찾았을 때처럼 음악에서도 카타르시스를 만난다.
음악을 통해서 추억이나 좋은 여행지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오롯이 음악을 듣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음악과 관련된 장소를 많이 찾았다. 노래로 떠나는 여행을 위해서 누군가 인도하는 것 같다.
어떤 날은 클래식을 통해서 또 다른 어떤 날은 팝송이나 국악을 타고 좋은 기운이 다가온다. 깊은 지식도 없이 음악을 접한다. 순간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면서 허세 같고 거품뿐이지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이런 삶이 오 마의 캡틴 키팅 선생님께서 외치는 카르페 뭐시기가 아닐까라며 행복한 추억을 한 장 더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