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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Jul 08. 2022

황금빛 노을 속 반짝- 단짝

첫 경험 이야기


태어나서 취학 전까지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은 빛바랜 사진처럼 단편적 장면들로 마음에 남아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4학년 때쯤부터 경험한 세계에 대한 기억은 훨씬 구체적으로 마음에 남게 되는데, 40년이 지나도 생생한 풍경을 보듯 남아 있기도 한다. 나에게 처음으로 단짝 친구가 생겼던 기억, 지금 내 딸의 나이와 같은 4학년 무렵이었다.


민정이라는 아이였다. 하얀 얼굴에 가지런한 글씨체, 부드러운 말투, 앞머리 없이 빗어 넘긴 동그란 이마의 연한 갈색머리는 늘 반머리로 묶고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의 민정이는 나의 단짝이었다. 공원 앞 매점을 하던 민정이네 집을 좋아해서 나는 자주 공원에서 놀았다.


일하느라 바쁘셨던 엄마는 퇴근시간까지 기다려야 했고 언니는 언니 친구들과의 시간이 필요해 나는 종종 혼자였다. 작은 아파트에서 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나는 민정이네 매점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공원에 계시던 주변 어른들의 따뜻한 보호를 받았고 친구와 둘만의 우정을 쌓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점점 알아가고 있었다.


학교가 끝난 후 공원 입구의 넓은 평상에 엎드려 같이 숙제하고 놀다가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었다. 공원의 소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보냈던 오후는 황금빛 아련한 그림 같았다.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와 강아지도 거기서는 마음껏 내 애완동물이 되어주었다. 길어진 오후의 그림자를 서로 밟으며 놀다가,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엔 민정이는 나를 꼭 배웅해주었다. 나는 그녀가 다시 돌아갈 오르막길이 걱정이 되어 나뭇가지가 쓰러져있던 도랑 어디쯤엔가 도착하면 여기서 헤어지기로 정했다. 우리끼리 그곳을 이별의 장소로 정하고 서로 천천히 그까지 걷다가 아쉬운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그리고 걷다가 뒤돌아 보고 노을 붉은 소나무 숲으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내 소원은 공원 매점 집 딸이 되어 민정이와 자매가 되는 것이었다.





내 아이도 이제 4학년 단짝을 평생 기억할 나이다-하지만 현재 단짝은 아직 (유감스럽게도) 남동생



5학년이 되었을 때도 우린 같은 반이 되었고 우정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5학년 2학기 시작하자마자 내가 전학을 가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는 이사 가고 말고의 선택권도 당연히 없었다. 사실 전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단짝 친구가 없는 학교, 민정이가 없는 새로운 학교에 간 첫날 그리고 그 후 한참 동안 나는 화장실에서 혼자 숨어 울었다. 새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더라도 민정이 만큼 좋아하는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말마다 민정이를 보러 가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몇 번이나 갔던 것 같다. 버스 정거장 몇 개만 지나면 도착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5학년인 나에게는 큰 용기를 내고 움직여야 하는 거리였다. 내가 가면 반가워했던 민정이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매주 갈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서  ‘나만 외로워하고 슬퍼하지, 사실 민정이는 지금쯤 잘 지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버스 타고 공원 매점까지 갈 용기가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6학년이 되었다. 민정이는 만날 때마다 학교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5학년 때 우리 반 그대로 바뀌지 않고 6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민정이 졸업앨범 속에 내 얼굴도 어떻게라도 붙여서 그 반에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내가 입학했던 국민학교는 학생수가 적어 같은 학년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입학했고 그 친구들과 졸업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가장 소중한 내 친구 옆에 내가 친했던 반 친구들 모두와 함께 졸업하는 꿈을 꾸었다.


그 친구들을 여전히 내 마음속 같은 반으로 담은 채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새 친구들도 사귀어 가며 현실의 생활에 노력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면 마음속으로 매일 민정이네 공원 매점으로 달려갔다.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달려 올라가면 나오는 평상과 소나무 그늘을 매일 혼자 마음속으로 찾아갔다. 나는 내 첫 단짝과 함께 보낸 시간을 잊지 못해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처음 깨닫게 되었다.


중학교 진학 후에 놀러 갔던 민정이네 집에서 졸업앨범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앨범을 솔직히 몰래 가져오고 싶었었다. 나에게도 의미가 너무 컸던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교 운동장 사진을 넘겨 보고 만져보고 그리워 목이매였다. 내 마음은 그곳에 있는데, 내가 그곳에 없다는 것이 서러워 울었었다. 내가 없어도 괜찮은 그 졸업앨범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앨범이 되었다.


민정이는 몇몇 친구들과 졸업 후에도 모임을 하고 있어 만나고 있다고 했다. 엄마들끼리 친해서 주기적으로 여행도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학생도 끼워주면 안 되느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지만 사실 끼워줘도 문제였다. 바쁜 우리 엄마 없이 나만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움이 너무 크면 현재를 살 수가 없어서 나는 둔감한 마음을 연습했다. 강렬한 감정을 잊어야만 새로운 곳에서 웃으며 새 얼굴을 볼 수 있기에 나는 억지로라도 사랑하는 내 친구를 잊어버려야 했다. 과거를 너무 좋아하고 그리워하면 현재를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어린 나는 온몸으로 경험했다. 나 없이 다른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만나고 여행을 가는 내단 짝을 생각하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고 슬퍼서 나는 나를 구해야 했다.


단짝은 한자로 '오직 단(單)’ 짝인데, 나만의 오직 단짝이 없이 나만 ‘단’ 독(單獨)으로 떨어져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살기 위해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나 스스로 단짝을 잊고 단독으로 있으려고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내가 잊힌다는 것, 흐릿해지는 그의 마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함, 내가 없어도 그럭저럭 괜찮음을 보고 있다는 것은 강아지 같이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슬픈 일이었다.


떠난 사람은 나였기에 민정이도 아마 슬펐을 것이다. 빈자리가 컸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과거의 그리움으로 가득 차 늘 그 평상으로 달려갔지만 소나무 그늘 속을 벗어난 적 없이 여전한 오후의 황금빛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민정이는 그 그리움이 나보다는 크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빛나던 오후의 그림자를 밟으며 도랑에서 헤어지던 일들은 곧 잊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많이 집착하고 더 많이 그리워하는 나는 이런 내가 힘들어, 이런 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볍고 또 더 가벼운 관계를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제대로 잡아보지고 못하고 떠나보낸 인연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직업이 되어버려 수많은 사람의 뒷모습들을 보아도 웃고 서있게 만들어버렸다.


첫 경험 후에 우리는 자신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경험을 하기를 원하는지 스스로 결정하곤 한다. 첫 번째에 너무 의미를 두면 두려워지게 된다. 처음 준 마음에 비할 것은 없기에 의미를 둘 수록 집착하게 된다. 다시 떠올리고 비교하고 판단하게 된다.


그때 이후부터 나는 첫인상도 마음에 남겨두지 않으려고 했다. 첫 경험보다 그 이후의 경험에 가치를 두었다. 바꿀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시선을 돌렸다. 끝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삶에서 첫 경험만을 너무 크게 담아 두기보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예상치 못했던 재미와 그 이상의 다양한 가능성에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내 모든 첫 경험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의 늪에 끈적하게 파묻히는 순간도 좋아한다. 단지 주의할 사항은 현실에 만족하고 있을 때 그곳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움의 늪에서 우울의 늪으로 더 깊이 들어가 버릴 수도 있다.


때론 내 역할이 나를 먹어 나에 대해 너무 무뎌졌을 때, 음악에도 글에도 눈물이 잘 나지 않는 느낌이 드는 순간 잠시 떠올려본다. 삭막해지고 버석거리는 메마른 마음일 때 촉촉한 습기가 그리워지듯 어린 시절 진실한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으로 걸어가 본다. 비교 평가 판단 그 어떤 포장이나 선입견 없이 순수했던 내가 만난 모든 처음을 기억해보며 그때 경험했던 온전한 사랑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자기 방어를 위해서, 살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하지 않고, 엄마 때문이라거나 환경 때문이라고 탓하기보다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오르막길을 걷고 내리막길을 달리면서 콩콩 뛰는 작은 심장을 잡고 혼자 버스를 탔던 어린 나를 사랑으로 안아준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좋아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힘을 내고 있는 나는 이만큼 잘 자랐고 잘 나이 들어가는 중이라고 자신을 쓰다듬어 줘 본다. 그리움과 이별들이 나를 아프게 했고 가끔 걸음을 멈추게 했지만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며 내 팔로 나를 안아줘 본다.



첫 경험은 중요하다. 그것으로 우리는 분명히 성장한다. 큰 의미를 두고 살아왔든, 기억 속에 크게 남겨둔 것 없이 사라져 버렸든 첫걸음마를 뗀 아이가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이제 눈에 보일 뿐이다.

그 어떤 좋고 나쁜 첫 경험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내 갈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것.

힘들어 보여도 이까지도 너무 잘 달려왔다고 토닥여본다.


나의 첫 단짝 친구는 어떨까 민정이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 답이 무엇이든 이젠 괜찮다. 미련과 집착과 그리움 덩어리인 이런 나와 내가 단짝이 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의 단짝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니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짝이 생겼다. 사이버 공원길 구석 도랑 어딘가 글로 이어진 나뭇가지 아래서 매일 만나고 헤어지며 서로를 배웅하는 글다(多)짝 친구들과 이제 함께 있다.

첫 경험은 진화한다.




7월1주 보글보글 글놀이
 "첫 경험"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의 <아픈 기억만 남은 첫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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