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20대 중반이 다 되도록 요리를 한 적이 없었다. 일단 먹는 것에 그다지 큰 열정이 없었으므로 요리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녀가 만들어 본 음식이라고는 계란 후라이와 라면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그녀가 만든 계란 후라이와 라면은 신기하게 너무 맛이 없었다.
그녀는 '전문가론'을 신봉하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요리는 전문가에게!"라고 외치곤 하였다. '음식은 전문가가 만든 걸 사 먹으면 되지.'
사실 그녀가 고집스럽게 요리를 하지 않은 것은 여자만 요리를 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 저항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많이 바뀌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그러한 분위기가 더 팽배해 있었다. 그녀에게 사회를 바꾸겠다는 큰 꿈 따위는 없었기에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개인 차원의 선택뿐이었다.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고집도 그것의 일환이었다.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몇 년을 사귀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남자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남자 친구가 소풍을 가기로 한 날 전날이었다. 그녀는 문득,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결심했다. '내일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싸가겠어.'
그녀는 샌드위치 재료를 사러 갔다. 그동안 간식거리나 음료수를 산 적은 있었어도 제대로 된 식거리는 난생처음 자발적으로 사러 간 셈이다. 무엇을 사야 할지는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록 만들어본 적은 없어도 샌드위치를 먹어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샌드위치 재료를 담았다. 식빵, 햄, 치즈, 양배추.
시장부터 그녀의 집까지는 약 7분 거리였다. 늘 수월하게 다니던 길이었다. 그러나 양배추와 함께한 길은 달랐다. 양배추를 아기 안듯 두 손으로 받치고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 너무 멀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그녀는 일단 샤워부터 했다. 혹자는 그것을 '목욕재계'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뽀송뽀송해진 상태로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샌드위치 따위는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에 혹여나 겪을 시행착오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예행연습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녀는 이토록 준비성이 철저했다.
식빵의 한 면을 버터에 살짝 굽고 햄도 지졌다. 양배추 잎을 뜯어 씻는데 굉장히 빳빳하다.
이거, 원래 이랬나? 이걸 이대로 샌드위치에 넣으면 되나?
구운 빵 위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햄과 치즈와 양배추를 얹고 케첩을 뿌린 후 구운 빵을 덮는다.
빳빳한 양배추 때문에 식빵이 들썩인다.
이게 왜 이러지? 데쳐서 넣는 건가?
체중을 실어 샌드위치를 한동안 누른 다음 반으로 잘라 부모님께 대령한다.
"이거 내가 처음 만든 샌드위치인데 맛은 보장 못해."
그녀의 부모님은 큰 딸이 생전 처음 만들어준 음식에 싱글벙글이다.
"이야! 맛있다 맛있어. 잘 만들었네."
두 분의 칭찬에 그녀도 뿌듯하다. 그래,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못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신다.
"근데 특이하게 양배추를 썰지 않고 통으로 넣었네?"
"그... 샌드위치에 원래 통으로 넣지 않나?"
"통으로 넣는 건 양상추고, 양배추는 보통 잘게 썰지."
뭐라굽쇼?
아, 어쩐지 파는 샌드위치에 들어있는 야들야들한 식감이랑 다르게 빳빳하다 했더니...
미리 안 만들고 당일에 만들어갔으면 어쩔 뻔...
그 나이 먹도록 양상추와 양배추도 구분 못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의 모자람을 지적하기보다 빳빳한 양배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어주며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래, 양배추면 어떠하고 양상추면 어떠하리? 처음으로 요리를 시도한 것이 중요하지!
그 실패를 발판 삼아 그녀는 다음날 그럴 싸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갔고 그녀의 남자 친구는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