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민트의 폭로전
안녕~ 친구들? 전에 우리 집 마당의 '고양고양님'의 이야기를 아주 열심히 들어주었던 인간 친구들 잘 있었어? 나도 할 말이 많았는데 그땐 봄이다 보니 집안에서 낮잠을 너무 즐기느라 글이 금세 끝나버렸더라.
이제야 우아한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네.
내 이름은 민트.
고양이 인생 3년 차 꽃다울 나이지. 이 집에 살기 전 아파트 여기저기 길에서 1년 반, 이 집에서 일 년 반을 보내는 중이야. 난 '포인 핸즈' 유기동물 사이트에서 알려져 이곳까지 모셔져 왔어. 나를 모시려면 꽤 까다로운 면접시험도 봐야 했고, 내 시종들 준비물들을 집사가 꼼꼼히 구비해야 했는데 이 집 집사가 그래도 성의껏 마련해 뒀길래 그녀를 합격시키기로 하고 여기서 내 우아한 첫발을 내디디기로 했어.
이 집 집사는 마당 잡풀 뽑기가 취미인데, 내가 간식으로 촵촵 즐기고 있으니 그건 놔두고 내 사진이나 잘 찍고, 내 아름다운 일화들을 정리해 글로 잘 써보라고 충고도 좀 해주면서 이집을 관리하는 중이야.
그런데 이번 주에는 '가족이 하는 폭로전'이 주제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집사를 가족으로 데리고 사는 내가 신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지. '폭로' 라니! 아 나는 그런 비밀스런 것들을 너무 좋아하거든~
인간들은 모르는 세상의 비밀을 고양이는 언제나 눈감고 모르는 척해도 다 듣고 알고 있어. 알쏭달쏭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도 우리 고양이들이 주인공이듯, 나는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양쪽 세상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실제 인지 가짜인지 중첩된 세상, 그 모두를 다닐 수 있는 묘상 한 고양이 묘 씨거든. 우리 뼈대 있는 묘 씨 가문 이야기는 머리 아프니까 다음에 차차 하기로 하고, 일단 우리 집을 관리하는 집사의 만행을 본격적으로 폭로해볼까?
오늘 나는 그동안 내가 알게 된 우리 집 집사에 대한 숨겨진 5개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 생각보다 충격적이고 실망스러울지도 모르니 기대해. 폭로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고도 난 눈을 딱 감고 내가 안 그런 척하는 건 자신 있으니 너희도 딱 모르는 척해줘 약속이다!
첫 번째 그녀는 최악의 스타일리스트야.
가족들 옷과 자기 옷을 숱하게 골라왔으니 뭔가 감각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마당 산책용 옷을 준비한다길래 모르는 척 기대했더니 저것 봐. 턱시도라니? 얘들아, 내 표정 좀 볼래? 난 회색 칙칙 털색은 비록 이렇지만 수컷이 아니거든? 검은 나비넥타이라니? 주문할 때 다른데 쳐다보고 클릭한 게 아니라면 나의 이 세련된 그레이와 너무 안 어울리는 노랑 체크에 인상이 안 구겨질 수 없었어. 그래 놓고 내가 이 옷을 벗고 탈출하지 않기를 바라다니.
성별에 따라 핑크색을 입는 그런 유치한 스테레오 타입의 취향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의 고귀한 '민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옷을 만들어 가져와 본다면 입어볼 의향은 있긴 해. 하지만 저건 도저히 안 되겠어. 입히면 자꾸만 내가 고장이 나네.
게다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 나한테 모자를 씌우고 목에 빨간 리본 끈을 묶어둔 건데.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니? 아무리 내가 이쁘지만 내가 선물도 아니고 목에 고급 실크 레이스 초커 목걸이도 아니고 피자 배달 왔던 포장끈을 묶어두다니! 게다가 이런 나에게 산타모자를 씌우면 사람들이 내가 너무 깜찍해 인형인 줄 알 거 아니니 ~ 언제나 나는 우아함을 원한다는 거 잊지 마.
그리고, 부디 우리 집사가 애들 성장 수준에 맞춰서 우리 동네 애들 아무도 안 하는 인형놀이는 이제 그만하고 청소나 좀 하기를 바라고 있어. 모아둔 인형을 집사 남편이 좀 버리자고 아무리 사정해도 애들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하나도 못 버리고 안고 있다니깐. 이 집 지하는 이사 와서 처음에는 도서관으로 하자고 해놓고는 아직도 골동품 인형들로 엉망이야. 못 말리는 우리 집 정신연령 막내지.
두 번째, 그렇게 어른이 되다 만 취향을 가진 우리 집사지만, 사실 그녀는 치명적인 유혹의 여왕이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상냥한 목소리와 미소로 속였나 모를 거야. 아주 가면을 자유자재로 바꾸는데 말이지, 내가 거기 속지 않으려고 눈을 딱 감고 앞발을 넣고 식빵 자세로 명상에 잠겨 있다가도 그 반가운 목소리 톤을 듣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발등을 비비게 되네? 그러다 배를 내밀고 철퍼덕 뒤집어져 버리게 되는데 아 음냐 음냐… 무장해제되는 이 느낌~ 우앙~너무 좋아…
악! 그런데 그게 바로 함정이었어!
금세 내 몸은 순식간에 한 팔로 잡혀서 막대기에 이상한 걸 묻혀 벅벅 쓸어대며 이빨 고문을 당하거나, 손발톱이 강제로 납작하게 눌려져 열 발가락이 벌려진 채로 그동안 숨겨 놓고 갈아온 내 날카로운 무기가 또깍또깍 잘리고 말아. 그러다 중간에 도망치는 데 성공하면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야. 다시 나를 상냥하게 부르는데 이때는 간식을 줄 때가 많아. 하지만 방심하다가 가끔 얼굴이 이리저리 문질러지며 눈곱 떼임을 당하거나, 참을 수 없는 간지러운 물을 부어서 귓구멍 고문을 당할 때도 있어. 으... 그녀의 치명적 유혹에 매번 당하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
그때 난 생각해. 내가 담에 저 목소리를 믿으면 고양이가 아니지! 하고 냥다짐을 하곤 해. 그녀의 가면 쓴 목소리는 계속 의심하지 않으면 순간 잡혀버리고 말아. 하지만 신기한 건 그녀에게 유혹을 당하고 난 후엔 이유는 몰라도 내 몸이 뭔가 상큼하고 새롭고 시원한 느낌이 나는 거 있지? 음 ~ 민트 초코맛처럼 뭔가 취향 확실한 냥이도 계속 빠져버리는 함정이랄까? 치약에 왜 초코를 넣어먹냐고 발끈하는 집사의 친구가 있다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이름이 민트인데 자꾸 먹자고 달려들까 봐 듣기는 싫네?
호호 민트 초코 안 좋아하면 패스야~ 나는 모두의 취향을 존중한다고.
세 번째 폭로: 굉장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듯 방금 말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둔감녀야.
어떻게 음악과 소리에 예민한 예술가 남편이 그녀와 사는지 나는 알다가도 모르겠어. 둘은 정말 미스터리야.
역시 인간들은 좌, 우 혹은 앞 뒤든 서로 반대쪽 난간에서 출발해 천천히 걸어와서 가운데서 딱 만나 노는 재미로 사는 걸로 보여. 그들도 우리처럼 사뿐히 균형을 잘 잡으면 이마에 브이자를 만드는 일은 별로 없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우리 둔감녀 집사가 친절한 가면을 쓰고 상냥하게 구는 건 다년간 밖에서 그런 일을 했었기 때문이래. 그런데 나도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는 건데 말이야….. 너 그거 알아? 이렇게 네 번째 폭로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
사실 그녀의 자기소개에 나오는 이야기가 다 거품 스펙이라는 거 말이야! 놀랬지?
아니! 그럼 자기소개 위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경력은 사실이야. 하지만 너희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런 경력만큼 대단히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야. 그런 사실이 있지만 실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은 궤변 같지만 둘 다 맞는 말이야. 잘 들어봐.
정말 잘난 사람은 승무원을 할 수가 없어. 특히 15년 이상 일한 우리 집사처럼 승무원을 오래 한 사람은 자신이 너무 잘났다고 생각하면 견뎌낼 수가 없다는 군.
입사 전 모델 활동을 했던 예쁘고 잘 나갔던 친구 00 이는 일하면서 참을 수 없는 화를 견디지 못하고 매일 투덜거렸다가 1년 간신히 버틴 후 관두었다네. 그만큼도 엄청 오래 버틴 거라고 했다는군. 어느 날 함께 비행 갔던 날 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군. 나가면 다들 자기가 너무 예뻐서 어디든 공주처럼 받들어 모시는데 왜 자기가 모르는 손님들이나 매니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화가 난다 나? 아무튼 그녀는 사실 참 이뻤지만 마음이 딱 우리 고양이를 닮은 것 같더라. 실수로 인간으로 잘못 태어난 건지, 나는 그녀가 이해가 팍 되더라고. 너무 또 이쁨을 많이 받다 보면 살기 힘들기도 하다는 걸 고양이들은 좀 알거든.
하여간 우리 집사는 너무 잘나지도 않고 그리 못나지도 않아서 회사를 즐겁게 오래 다닐 수 있었다고 종종 말하곤 했지. 자기가 쓴 책의 자기소개 첫 줄에 강조한 대통령 전용기 승무원 경력도 자기 잘나서가 아닌 거래. 말했쟎어. 일단 거긴 모두 지잘난 사람은 없다는 거!
잘나서 대통령을 모시는 게 아니라 맡은 손님 누구라도 잘하려는 마음으로 일한 사람이라 교관이 되기도 했고 대통령님을 직접 서비스할 기회도 있었다는 군. 멋지게도 써놓고선! 거참 환상을 깡그리 깨지 않니?
난 정말 천국의 미소를 갖고 있어야 대통령님께 말 걸고 구름 위에서 대화를 나눌 줄 알았지.
그렇게 신나게 비행하던 집사는 결혼 후 열심히 육아를 하다 비행을 그만두고 책을 썼었어. 그런데 여기서 또 중대한 다섯 번째 폭로를 하려는 중이야. 사실 전에 내가 매일 새벽 4시에 애들 다 깨울 만한 큰 소리로 야옹 알람을 울려 집사의 기상을 도왔었어. 애들 깰까 봐 한번만 울어도 벌떡 일어나더라~ 그 바람에 게으른 집사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서 책을 만들게 했으니 나야말로 출판의 일등 공신 아니니? 그런데, 이 정도 기여한 나를 책 표지로 넣어 우아한 내 얼굴을 만방에 알릴 줄았는데 표지는 출판사 선택으로 아예 바꿀 기회가 없었다고 하더라. 게다가 책 속에 삽화 하나 안 넣어주다니, 집사에서 가족으로 좀 인정해주고 싶었지만 난 좀 삐졌어. 아침에 또 깨워주나 봐라! 흥!
아참! 공교롭게 오늘로 딱 1년이 된 집사의 책. 읽어보면 폭로하고 싶은 게 더 많은데, 흠 내가 글을 못 읽는 게 한스럽네. 혹시 읽은 인간 있으면, 글과 사람이 다른 점을 발견하면 제보해줘.(책 홍보가 절대 아니야~이 험난한 출판시장에 고양이가 홍보해서 몇 권 팔겠니?) 누군가 제보해준다면 내가 폭로전 2탄을 준비해 볼게. 아마 너무 다른 게 많아서 읽다가 지칠까 봐 걱정이 되네. 히히
그럼 좀 더 강한 폭로를 원한다면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와. 내가 사실 냥 펀치 하나 못하고 순하지만 만나면 아주 내가 하악질 살벌하게 한번 보여줄게. 모두에게는 양쪽 두 가지면이 함께 공존하니까 말이야. 그때그때 보고 싶은 대로의 내 모습을 네가 만나게 될 거야.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가능성의 세계는 네 마음에 달려있어. 네가 선택한 대로 나를 만나게 될 거야. 어쩔 때 너 자신이 완벽히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저 나 민트 고양이 님이 보고 싶다면 말이지. 지금 이 순간 젤 중요한 니 욕구를 떠올려봐~ 그 마음을 가진 나를 딱 만나게 될 거야!
그럼 이제 네 앞에 매일 새벽 배송되는 진짜 상자를 열어봐.
다음 차례는 바로 너야!
네가 너 스스로 폭로의 상자를 열어봐!
넌 죽어있니? 살아있니?
그리고 어떤 너를 선택했니?
7월 2주
보글보글 글놀이
"oo 폭로전"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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